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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얼굴 반찬-공광규(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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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 2008)

이 시의 주인공은 밥상머리에 맛있는 반찬은 없지만 그래도 한 지붕 아래 '침상머리 반찬'은 있는 듯하다. 뜨문뜨문 그래도 얼굴 도장은 서로 찍고 사는 모양새니 다행이다. 아예 밥상머리고 침상머리고 "얼굴 반찬"이 없어서 독거니 기러기니 서럽게 살아가는 팔자도 많다.

5월은 가족의 달이란다. 얼굴 반찬이 있는 갖가지 날이 많은 달이지만 있어도 그날뿐인 가족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시의 '옛날'처럼 살기는 이젠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옛 어른들의 말솜씨인 '얼굴 반찬' 하나로 이렇게 곡진하게 현실을 노래한 시도 드물다. 이 좋은 계절, 반찬 타령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서로에게 정말, 순, 진짜 '반찬 솜씨' 없는 시절이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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