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강(洛江)과 동천(東川)이 고을 한복판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길안천과 송야천, 위천 등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앞다퉈 낙강과 동천에 몸을 숨기던 옛 안동지방에는 화려하고 빼어난 강 문화가 숱하게 전해오고 있다.
강은 마을을 형성하고, 그 마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그 속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스며 있고, 또 서민들의 살림살이에는 그들만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전해져 오고 있다.
낙동강과 반변천이 빚어낸 절경마다 빼어남을 노래했던 시 구절이 남아 있다. 청량산을 지나 도산, 단천과 분천 등 낙동강 굽이마다 옛 선인들이 즐겼던 뱃놀이와 유상곡수의 아름다움은 강 문화의 진수다. 부산에서 출발한 소금 배가 안동 개목과 포진나루에 다다를 때면 이 일대는 내륙유통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기억 속으로 아스라이 잊히던 옛 강문화가 산업 모델로 새롭게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이야기를 입히고, 흔적을 찾아내고, 기억을 더듬어 옛 강문화가 새로운 모습의 물 산업으로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강 문화의 으뜸 '洛水에 배 띄워 놀다'
'허주부군산수유첩'(虛舟府君山水遺帖)은 낙동강과 반변천 12명승에 배를 띄워 거슬러 오르면서 그린 그림으로 꼭 250년 전의 '선유'(船遊'뱃놀이)를 엿볼 수 있다.
선유도의 일종인 이 유첩은 조선 영조 39년 때인 1763년 4월 4일 안동선비 허주 이종악(李宗岳'1726~1773)이 집안 어르신 4, 5명과 함께 자신이 살던 고성 이씨 대종택인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 앞에서 배를 띄워 닷새 동안 낙동강과 반변천의 명승 12곳을 둘러본 후 같은 달 8일 반구정(伴鷗亭'지금의 정상동)에서 뱃놀이를 마칠 때까지를 12폭의 그림으로 남겨놓고 있다.
이들의 뱃놀이 경로는 임청각 앞 동호(東湖)를 출발해 반변천 줄기인 양정(羊汀'지금의 반구정과 선어대 사이)~칠탄(七灘'내앞마을 상류)~사수(泗水'임하면 사의리 일대)~선창(船倉'임하면 암사 부근)~낙연(落淵'일명 도연)~선찰~망천~백운정~이호(伊湖'내 앞과 백운정 사이 강)~선어대~반구정에서 마무리 된다.
제1도인 '동호해람'(東湖解纜)은 허주 일행이 임청각 앞 동호에서 선유를 시작하는 1763년 4월 4일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산과 나무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림 뒤로는 고성 이씨 대종택인 임청각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오른편에 보이는 탑은 신세동 7층 전탑을 그린 것으로 7층의 형태가 선명하다.
동호 드넓은 백사장과 낙동강에 나룻배가 닻을 내리고 도포에 갓을 쓴 허주 일행이 출발하기 직전의 모습이 화폭에 담겨 있다. 이곳이 '견항진'(犬項津), 개목나루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6도 '낙연모색'(落淵模色)에서 일행은 '계곡을 달리는 기세 산악 같더니, 들판으로 흘러오니 문득 한가롭다네, 우레가 땅 밑에서 솟구치는 듯싶더니, 살펴보니 바위틈에 눈가루를 흩뿌리누나'라며 낙연(도연)폭포의 절경을 노래하고 있다.
안동시 역사기록관 최성달 작가는 "뱃놀이는 선비들의 강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낙동강과 반변천에 배를 띄우고 선유를 즐기면서 배 위에서 보는 절경들을 시와 그림으로 담아내는 선비들이 즐기던 조선 대표적 레저"라며 "안동이 가진 풍부한 물과 강 자원을 활용해 뱃놀이를 산업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상곡수'도산구곡 '풍류 진수'
'유상곡수'(流觴曲水). 삼짇날 정원에서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읊던 연회로 선비나 귀족들이 즐겼다.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띄워 술을 마시는 풍류로 강 문화의 진수다.
안동시 도산면 분천(부내) 농암 이현보 선생의 옛집 앞으로 흐르는 분강. 이곳에서 농암의 '어부가'와 '취시가' 등이 탄생했으며 선비 풍류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유상곡수의 풍경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지금도 물이 얕게 흐르면 농암, 퇴계, 김안국, 황준량 등 영남 좌도 유림이 유상곡수를 즐기며 어부가를 합창했던 자라바위, 농암바위(귀먹바위), 사자바위, 코끼리바위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농암집의 '취시가'에는 "자라바위의 감상을 경호(景浩'퇴계의 아들)와 중거(仲擧'황준량의 아들), 그리고 아들, 동생들이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천천히 흘러가서 귀먹바위와 사자바위를 지나 코끼리바위에 이르러 배를 바위에 묶어 놓고 놀았다"고 적고 있다. 이 글은 선비 풍류의 절정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상곡수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놓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강 문화 진수는 '구곡문화'다. 조선시대 유학의 장을 새롭게 연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열고 후학들과 연구하면서 무이산에서 학문을 이룬 주희를 생활의 모범으로 삼았다. 퇴계는 오가산지(吾家山誌)에서 청량산 계곡을 따라 낙천(洛川)이 굽이굽이 흐르면서 절경을 이루는 '도산구곡 원림'을 지어 노래 불렀다.
제1곡은 운암(雲巖)이요 제2곡 월천(月川), 제3곡 오담(鰲淡), 제4곡 분천(汾川), 제5곡 탁영(濯纓), 제6곡 천사(川砂), 제7곡 단사(丹砂), 제8곡 고산(孤山), 제9곡 청량(淸凉)으로 이름 지어 무이구곡에 비견해 읊었다.
도산구곡문화연대 이동수 회장은 "주희가 무이구곡의 제5곡을 '산 높고 구름 깊어 숲이 언제나 안개구름에 어둑하다'고 노래하며 그곳에다 무이정사를 지은 것을 두고 퇴계 선생은 도산구곡의 제5곡에다 도산서당을 마련하고 '오곡의 깊은 산 들어가니 은거하던 선비들 어디 있는고, 달밤에 거문고 뜯어본 들 저 산 앞 초부가 알아 주련가'라며 노래했다"며 "이렇듯 강물 줄기를 따라 형성된 절경에다 자신의 삶과 철학을 표현한 구곡원림이 안동지역에서만 전국 최고인 8곳이나 존재한다"고 했다.
◆소금배와 안동간고등어
안동시는 안동호 아래 보조댐에는 개목나루를 조성한다. '영가지'에 기록된 '견항진'(犬項津'개목나루)을 복원해 나룻배를 운항하는 등 낙동강 상류의 옛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개목나루는 안동민속박물관 앞 보조댐 4천950㎡(약 1천500평)에 48억원을 들여 나루터와 안동명주촌'주막촌'야외무대 등으로 꾸며진다. 지난해 5월 착공돼 올해 말 완공된다. 개목나루는 이 일대에 들어선 월영교와 한자마을'안동문화관광단지 등과 어우러져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가지(永嘉誌) 산천(山川) 편의 기록에는 '견항진은 부(府)의 동쪽 물야탄(勿也灘) 하류에 있다. 혹은 포항(浦項)이라고도 한다'고 적고 있다. '견항', '포항'은 모두 개목이라 불렀다. 들머리와 같이 물이 드나드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여 년 전만 해도 이곳까지 부산에서 출발한 소금배가 올라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돛을 단 소금배는 5, 6명의 뱃사람이 동승해 물이 얕은 곳에서는 밧줄로 배를 끌어올리면서 상류로 거슬러 올랐다는 것.
소금배가 나루에 도착하면 이 일대는 뭍에서 생산한 각종 곡물과 소금을 맞바꾸는 상거래가 번성했으며 소금 중간상인들이 달구지를 이용해 소금을 실어 나르던 모습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소금배는 낙동강을 더 거슬러 올라 지금의 예안 부포까지 올라갔으며 반변천을 따라 지금의 안동대 앞을 지나 포진나루에 다다르기도 했다는 말들이 전해온다.
권영한(83) 안동전통문화연구회장은 "내가 어릴 적 바닥이 평평한 돛배 형태의 소금배가 지금의 안동대교까지 올라온 것을 본 기억이 있다"며 "소금은 당시 살림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먹거리다. 안동지역은 안동간고등어 등 인근에서 가장 뛰어난 염장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지역으로 소금배'소금과 관련한 전통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덕에서 잡아 올린 고등어를 달구지와 등짐을 지고 임동 챗거리 장터까지 운송해 그곳에서 부패 직전에 소금으로 염장한 후 안동까지 이동하는 과정에 숙성돼 탄생한 '안동간고등어'는 국민 먹을거리로 자리 잡은 안동지역 대표적 수산 가공업의 모태가 됐다.
◆선유줄불놀이와 장빙제
이 밖에 안동지역에는 '선유줄불놀이'와 '석빙고 장빙제' 등 강 문화가 전해오고 있다. 해마다 탈춤축제 기간 하회마을 부용대와 낙동강을 배경으로 열리는 선유줄불놀이는 네 가지 놀이로 이뤄진다. 부용대에서 만송정으로 연결되는 줄에 매단 뽕나무 뿌리로 만든 숯가루에 불을 붙여 불꽃이 하늘에 비처럼 강으로 떨어지도록 한다. 게다가 부용대 위에서는 짚단에 불을 붙여 '낙화여'라 외치며 강으로 떨어뜨린다.
강 상류에서는 빈 달걀에 숯가루를 채운 뒤 불을 붙인 달걀 불을 띄워 보낸다. 이런 가운데 부용대 절벽 아래 낙동강에는 양반네들이 배를 띄우고 시를 주고받는다.
하늘과 강, 절벽 위에서 '불꽃'들이 쏟아지는 절경 속에서 선유를 즐기는 조선 선비들의 최고의 레저활동으로 손꼽힌다. 선유줄불놀이는 세계에서 흔치 않은 불꽃놀이다. 줄불놀이의 불꽃이 하늘로 오르는 게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퉁문화콘텐츠개발사업단은 몇 해 전부터 선조들이 여름철에 활용하기 위해 얼음을 채빙해 석빙고(石氷庫)에 보관해오던 풍습을 보여주는 '석빙고 장빙제'(藏氷祭) 행사를 재현하고 있다.
석빙고는 선조들이 겨울철에 얼음을 빙고(氷庫)라 이름 지은 동굴형 창고에 저장해 뒀다가 여름철에 더위를 물리치는 데 사용하거나 겨울에 잡은 은어를 보관했다가 여름에 임금님께 진상하기 위한 시설로 안동댐 민속촌 내에 남아 전해오는 시설이다.
장빙제는 ▷낙동강 강바닥에서의 채빙(採氷) ▷달구지와 어깨목도를 이용한 운빙(運氷) ▷안동댐 인근 석빙고(보물 305호)에 채워 넣는 장빙(藏氷) 순으로 진행된다.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인 안동산 은어를 저장했던 안동 석빙고에 낙동강 얼음을 채취해 운반하고 저장하는 석빙고 장빙제를 재현하는 것으로, 안동에서 11년째 치러지고 있다.
장빙제에는 북방의 신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리는 등 옛 낙동강 풍습을 재현하고 이를 산업화'문화 상품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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