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오후 11시 10분쯤 대구 수성구 상동 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같은 동 2층에 살고 있는 A(31) 씨와 3층에 거주하는 B(42) 씨는 층간 소음 문제가 빌미가 돼 서로 주먹을 휘둘렀다. A씨는 윗집에서 밤늦게까지 쿵쾅거리는 등 몇 달 전부터 지속적으로 소음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했고, B씨는 아랫집에 피해를 줄 만큼 시끄럽게 한 적이 없고 오히려 A씨가 자신의 집 현관문을 발로 차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아파트 18층에 사는 김모(41'여) 씨는 최근까지 윗집의 소음에 시달렸다. 오전 6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윗집 아이들 3명이 뛰는 소리와 장난감을 만지는 소리가 났다. 김 씨는 대구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성신청을 하고 상담을 받았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소음발생 억제를 위해 아이들을 교육하고, 오후 9시 30분 이후 정숙과 문 안쪽 소음방지기 설치 등을 김 씨 윗집에 권고했다.
최근 층간소음 기준이 강화된 가운데 분쟁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기준이라고 반기는 분위기와 함께 과도한 규제로 이웃 간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화된 층간소음 기준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는 최근 층간소음의 '인내한도(피해의 정도로 참을 수 있는 한도)' 기준을 기존보다 10~15㏈(A) 낮춘 기준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2005년 도입된 층간소음 기준은 이번에 처음으로 개정됐다.
기존 기준은 소음피해를 인정받으려면 '5분 평균' 소음도가 주간 55㏈(A), 야간(오후 10시~오전 5시) 45㏈(A)을 넘어야 했지만 새 기준을 적용하면 '1분 평균' 소음도가 주간 40㏈(A), 야간 35㏈(A)만 넘어도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1일 범위 안에서 일정시간(8~10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한 뒤 1분 평균을 구해서 기준을 초과했는지 확인하게 된다. 즉 새로운 소음기준은 현행보다 2배 이상 강화된 것.
특히 하루 동안 가장 시끄러운 때를 나타내는 '최고소음도'가 새로 마련됐는데, 주간 55㏈(A), 야간 50㏈(A)를 초과하면 인내한도를 벗어났다고 본다.
더불어 중앙환경분쟁조정위는 올해 말까지 층간소음 사례 100건을 측정해 금전 배상기준을 마련하고 소음 측정 및 평가방법을 수정'보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주'야간 시간대 소음피해와 기준치 초과 정도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단계적인 배상기준을 정하겠다는 것.
층간소음피해를 입었을 경우 배상 신청액이 1억원이 넘으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에, 1억원 미만일 경우 각 시'도 지방환경분쟁조정위로 신청하면 된다. 소음피해 현황은 분쟁조정위 전문가가 윗집에 알리지 않고 소음이 심한 시간에 측정하고, 신청이 접수된 지 3개월~1년 안에 배상액 결정을 내린다.
◆'현실적이다' vs '과도하다'
이번에 강화된 규제가 분쟁은 빈번하지만 정작 소음기준을 초과한 사례는 없던 상황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2002년부터 최근까지 층간소음으로 피해 배상을 신청한 건수는 전국적으로 398건이지만 인내한도 기준을 초과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에 주민 다툼이 빈번한 현실과 동떨어져 왔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박재덕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심사관은 "윗집과 아랫집 간의 층간소음 분쟁을 빠르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배상기준까지 정해지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일상생활소음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줄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강화된 기준이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웃 간에 분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에 따르면 아이들이 10초 동안 뛰어다니면 40.2㏈(A)로 주'야간 모두 1분 평균 소음도 기준을 넘게 된다. 어른이 발뒤꿈치로 강하게 걸을 땐 40㏈(A) 정도로 1분 평균 야간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물을 채운 1.5ℓ 페트병을 어른 가슴 높이에서 떨어뜨릴 때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는 55㏈(A)이고, 아이들이 소파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릴 때도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이는 모두 최고소음도 기준 중 주간과 비슷하고 야간은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망치질의 경우 순간 60㏈(A)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주'야간 모두 최고소음도 기준을 웃돈다.
주거개선문화연구소 차상곤 소장은 "기준 강화는 고의적으로 소음을 내는 사람들을 조심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윗집 모르게 소음을 측정해 피해보상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며 "앞으로 판례가 하나 둘 생겨나면 너도나도 소송을 하는 등 기준 강화만으로 분쟁 자체를 줄이긴 힘들다"고 주장했다.
새 층간소음 기준이 국토교통부가 내년 5월 시행할 계획인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과 일치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부는 아파트 바닥 두께를 21㎝ 이상이 되도록 하고 소음 기준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릴 때의 '경량충격음'이 58㏈(A), 아이들이 쿵쿵 뛸 때 '중량충격음'이 50㏈(A) 이하가 되도록 했다. 이는 이번에 도입된 최고소음도 기준을 넘어서는 수치로 규정이 제각각이란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규제보다 공동체 문화가 우선
환경부는 2일 수도권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해온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를 올 하반기부터 대구시를 포함한 5대 광역시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층간소음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시범 공동주택' 1곳(수성구 녹원맨션)을 운영해왔고, 현재 8개(구'군별 1곳) 아파트 단지를 시범 공동주택으로 추가하기 위해 공개모집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모에 신청한 중구 대신동 태왕아너스스카이의 류성자(62'여) 입주자대표회장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마찰은 서로 대화가 단절되고 교류 없어지면서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며 "자체 규약을 만들기 위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서로 터놓고 의견을 나누는 등 이웃 간에 정을 쌓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동구 봉무동 한 아파트 14층에 사는 이모(50'여) 씨는 윗집 아이들의 뛰는 소리와 어른 발걸음 소리, 발로 벽을 차는 소리 등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다 최근 대구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고, 윗집 주민은 권고를 받아들여 거실바닥에 방음 매트를 깔고 실내화를 신는 등 생활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을 보였다.
대구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법적 분쟁을 통해 금전적인 배상을 받게 되더라도 이웃 간 갈등은 줄지 않고 어느 한 집이 이사를 가기 전까지 다투는 등 오히려 서로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진다"며 "법적 기준에 기대지 않고 이웃 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서광호기자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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