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했던가. 단박에 시선을 확 끄는 기암괴석은 없지만 넉넉하고 깊어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산이 지리산이다. 미국에 진출한 지 30여 년 만에 계열사 50여 개를 거느린 기업군을 일궈낸 한아름 그룹의 권중갑(65) 회장은 사람을 귀히 여기고 정도 경영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CEO다. 사람을 산에 비유한다면 그는 지리산을 닮았다. 그는 온화하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목소리는 중저음이면서도 낭랑했다.
◆소탈하고 검소한 CEO
뉴욕 맨해튼 옆을 흐르는 허드슨 강을 건너면 뉴저지이다. 한아름 그룹의 중추회사인 서울트레이딩 Inc.의 본사가 있는 곳. 뜻밖에 회장 집무실은 아주 단출했다. 교실 정도 크기에 집무용 책상 하나와 회의용 탁자'의자, 책장이 전부였다. 그 흔한 명패나 여비서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인의 성격과 경영철학이 어떠한지 집무실은 무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아름 그룹 산하의 최대 계열사는 H마트이다. H마트는 미국 최대의 아시안 슈퍼마켓 체인으로 현지에서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정작 현지 한인사회에서 권 회장의 이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성실히 기업활동에 전념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에 이바지하면 되지 대외적으로 많이 나서는 것은 제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는 기업을 하는 사람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인터뷰를 정중히 고사했다. 이에 취재진은 고향의 신문사로서 그의 삶을 가감 없이 기사화하고 싶다는 의향을 수차례 전하고서야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더 큰 세상을 향해
권 회장은 1948년 경북 예천군 용문면 덕신리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우리나라의 오지 중의 오지로, 정감록의 십승지 중 하나인 상금곡동의 바로 옆 동네가 그의 고향이다. 풍광 좋은 상금곡동은 정승판서들의 은퇴 지역이기도 해, 예로부터 경상 관찰사가 부임하면 사흘 안에 인사하러 갔다고 전해진다.
권 회장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유독 좋아했다. 스크린을 통해 비친 넓은 바깥세상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부초교와 예천중학교를 1960'63년에 각각 졸업한 그는 예천농고에 진학했다가 3학년 때 부산 영남상고로 전학을 갔다. 그렇다고 부산이 딱히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산행을 택한 것은 더 큰 세상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내향적이긴 해도 겁이 없고 모험심 강한 성격이라고 했다.
졸업반 때 무역회사에 입사한 그는 군(월남 파병) 제대 후 복직했다가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당시 중동 붐이 한창이었다. 다니던 무역회사에서 중동 관련 업무를 보았던 터라, 중동을 택했다. 거의 무일푼으로 중동에 갔지만 워낙 성실하다 보니 중동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사업도 착착 진행됐다. 중동서 발판을 다진 그는 4년 뒤 부산에서 희창물산을 설립하고 1979년 미국에 진출했다.
◆사랑과 정성이 성공 비결
그는 1981년 뉴욕에 한아름마트를 열었다. 아시아 식품을 전문으로 하는 슈퍼마켓이 콘셉트였고 결과는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H마트의 전신이 바로 한아름마트다. H마트는 권 회장의 동생인 권일연(58)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H마트는 현재 미국 각 도시에 50개 영업점을 두고 있으며, 식품의 신선도와 우수한 고객 서비스를 앞세워 아시아 식품 시장에서 6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과 정성으로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고객의 마음에 전달된 것 같다고 권 회장은 말했다.
H마트 말고도 한아름 그룹은 식품 및 도소매, 무역, 냉장업 등 50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국에는 7개의 계열사가 있는데 고향 예천에 있는 우일음료도 그중 하나다.
요즘 들어 권 회장은 글로벌 호텔 체인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스탠포드호텔을 인수한 것을 필두로 칠레와 파나마, 그리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스탠포드호텔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스탠포드 호텔이 들어섰으면 합니다. 세계적 비즈니스호텔 체인을 만들어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호텔리어를 꿈꾸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는 기업을 하면서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7전 8기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재기하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한번 무너지면 본인에게도 타격이 크지만 직원과 그 가족, 거래처에 입히는 대미지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최선의 경영전략으로 삼았고 이를 지키고자 애써왔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는 '사업이 취미'인 사람이다.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과라고 했다. 한 달에 20일은 출장을 다니는데 일정의 상당수는 계열사 혹은 영업장 방문이다.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 청소부, 식당 아줌마 등 직원들의 이름을 꿰고 있었으며 안부를 일일이 물었다.
그는 '겸손한 자만이 다스릴 것이요, 애써 일하는 자만이 가질 것이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미국의 철학자 매머슨이 한 말이다. 그는 이 경구를 자신의 다이어리 노트에 써놓고 늘 가까이 두고 있으며, 직원들에게도 늘 강조한다고 했다.
"경북의 젊은이들을 인턴사원으로 채용하는 협의를 경상북도와 추진했는데 미국 비자 문제 때문에 기대만큼 채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문제가 잘 해결돼 우리 회사가 고향에 좀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에 동행한 김준호 경상북도 뉴욕사무소장은 권 회장을 일컬어 "조용하지만 바다처럼 넓고 깊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뉴저지에서 글'사진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권중갑 회장 프로필
▷1948년 11월 17일: 경북 예천에서 태어남
▷예천서부초교'예천중학교'부산상고'동아대 상학과 졸업
▷1977년: 중동에서 KWONS Corp. 설립
▷1981년: 희창물산 설립(부산), 한아름마켓 설립(미국'캐나다)
▷1989년: 서울식품(주) 설립(미국)
▷2011년: 스탠포드호텔서울 개점(마포구 상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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