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간이식 후에도 사경 헤매는 고재호 씨

희망도 잠시…기관지 구멍 뚫어 가래 뽑아내야

고재호 씨가 가래 때문에 괴로워하자 아내 하정분 씨가 면봉으로 기관지에 쌓인 가래를 긁어내고 있다. 고 씨는 매일 기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옆에서 간호하는 하 씨 또한 병간호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고재호 씨가 가래 때문에 괴로워하자 아내 하정분 씨가 면봉으로 기관지에 쌓인 가래를 긁어내고 있다. 고 씨는 매일 기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옆에서 간호하는 하 씨 또한 병간호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여보, 괜찮아요? 가래가 걸린 것 같아요?"

아내 하정분(50'경북 칠곡군 동명면) 씨의 물음에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 고재호(53)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 씨는 간 이식 수술 후 갑자기 걸린 폐렴이 극도로 악화돼 기관지에 구멍을 뚫어 가래를 뽑아낼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고 씨가 가래 때문에 기침을 심하게 할 때마다 아내 하씨가 일으켜 세우고 남편의 눈빛을 보며 나머지 상황을 판단한다.

4년 동안 간경화를 앓던 고 씨는 지난해 10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간 이식을 받을 때만 해도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에서 벗어날 거라는 생각에 희망을 품었지만 올 1월 말 배에 복수가 차 다시 입원을 하면서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착하고 다정다감했던 남편

아내 하 씨는 고 씨를 착하고 다정다감한 남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어요. 체구는 작았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 못할 것이 없다던, 헌신적인 사람이었어요. 말도 재미있게 잘하던, 멋진 남자였지요."

착하고 멋진 남편이었지만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결혼한 뒤에 잠시 맞벌이를 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는 남편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던 중 약 7년 전 남편이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했고, 살길이 막막하던 부부는 폐품과 파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기 시작했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은 아니지만 생계유지와 하나뿐인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열심히 고물을 주워 팔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중 6년 전 살던 동네 근처에 고물상을 하나 차릴 수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살 만한 정도의 규모였다. 그렇게 1, 2년 열심히 고물상을 꾸려나가던 중 고 씨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수술만 하면 건강해질 줄 알았는데…

5년 전 갑자기 고 씨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깜짝 놀란 고 씨 부부는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고 씨에게 간경화 진단을 내렸다. 피를 토한 것도 간경화로 인해 식도가 붓는 증상이 발생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예전부터 B형 간염을 앓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술은 한 방울도 못 마셔요. 차라리 술을 많이 마셔서 간경화에 걸린 거라면 납득이라도 할 텐데 술도 안 마시고 열심히 일해 온 남편이 쓰러지니까 하늘이 원망스럽더라고요."

이때부터 고 씨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한 달 동안 입원하면 고물상은 문을 걸어잠글 수밖에 없었다. 겨우 몸을 회복해도 고물상 문을 연 날보다 닫은 날이 더 많았던 탓에 벌이는 시원찮았다. 그러던 중 고 씨에게 이식할 간이 나타났다. 한 뇌사자로부터 공여받은 간을 고 씨에게 이식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고 씨 부부는 피땀 흘려 겨우 장만한 집을 담보로 은행에 간 이식 비용으로 3천만원을 대출받았다.

지난해 10월, 고 씨의 간 이식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고 다음 달 퇴원했다. 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갑자기 고 씨의 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했고, 결국 올 1월 말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이때는 이미 저혈압, 폐렴, 당뇨합병증 등 여러 병이 겹쳐 고 씨의 몸에 들이닥친 뒤였다.

"수술만 하면 남편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남편 수술을 받게 했는데…. 1월 말에 병원에 입원하고 지금까지 병원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아내를 눈물 나게 하는 세 가지

아내 하 씨는 남편의 몸 상태, 곧 군대에 갈 아들, 병원비와 생활비로 쌓여 있는 빚만 생각하면 이내 눈물이 흐른다. 수술받기 전만 해도 65㎏이던 고 씨의 몸무게는 올해 1월 중환자실 입원 이후 39㎏까지 쑥 빠져버렸다. 아내 하 씨는 고 씨의 뼈밖에 남지 않은 다리와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는 상체를 볼 때마다 안쓰러워 마음이 너무 아프다. 최근에는 대상포진까지 생겨 자주 고 씨의 몸을 긁어주는데, 아내는 너무 많이 긁어 거칠어진 남편의 등 피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하 씨는 다음 달이면 군대에 가는 아들을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난다. 가난하게 살아온 탓에 한 번도 좋은 옷 입히지 못하고 좋은 음식 먹이지 못해도 불평 한마디 않고 착하게 커 온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군대에 간다고 하니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더 해 먹여 보내고 싶은데 매일 남편의 병간호에 매달린 탓에 그럴 만한 여유도 없다. 다음 달이면 군대에 가는데도 아들은 하 씨를 대신해 교대로 고 씨의 병간호를 돕는다.

나날이 늘어가는 병원비와 빚도 고 씨 부부의 목을 죄어온다. 남편의 간 이식 수술을 위해 집을 담보로 빌린 3천만원은 이미 이자까지 합쳐 5천만원으로 불어나 있다. 그리고 지인들로부터 빌려 쓴 생활비도 2천만원이 넘었다. 1월에 입원한 이후 밀린 병원비도 2천만원 가까이 된다. 장만한 집은 이미 은행에 압류된 상태다. 고물상은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 지난해 11월에 결국 폐업했다. 생계수단이 모두 사라졌지만 고 씨 부부는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자신의 집이 있고 또 고물상으로 사업자등록이 돼 있었던 것이 걸림돌이 돼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돼 의료급여를 받기 힘든 상태다.

길어진 투병생활에 고 씨도 아내 하 씨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폐렴으로 인한 가래와 기침으로 매일 잠을 못 자는 고통에 시달리는 고 씨도 괴롭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하 씨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병원 옥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더라고요. 너무 힘들고 지쳐 극단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함부로 내색하지 못해요. '괜찮겠지' 하고 넘기죠.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점점 버티기 힘들어지고 있어요."

고 씨는 병상에서 눈물 맺힌 하 씨의 얼굴을 보자 괴로운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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