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고쳐야 할 대기업의 전근대적 행태

국내 23개 대기업 가운데 LG와 포스코 등 14개 회사가 입사 지원서에 부모의 학력과 현재의 직위 등을 기재하게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9개 회사는 이 항목이 없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기본적인 신상 명세를 파악하고, 성장 환경 정도를 알아보려는 것일 뿐, 입사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많은 취업 준비생은 이런 태생적 요소가 입사 평가에 반영될 것으로 믿는다. 실제로 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부모와 관련한 내용을 점수로 계량화하지는 않지만, 입사 평가 위원의 주관적 판단에는 충분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학력, 스펙 파괴였다. 현재 상태에서 본인의 실력만 검증되면 다른 요소 때문에 입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사기업으로도 많이 퍼져 있다.

최근 현오석 부총리는 내년부터 공공기관 채용 때 스펙보다 중소기업에서 3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선으로 선발하겠다고 했다. 토플이나 토익, 스펙을 쌓기 위한 외국 유학 등 사회적 낭비 요소를 막고, 취업 준비생의 눈높이를 낮추게 해 청년 실업률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상일 뿐, 취업 현장은 전혀 딴판이다. 취업 희망자가 선호하는 기업에서는 온갖 스펙에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을 따진다. 태생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펙만이라도 높이려고 대학 졸업을 늦춰가며 온갖 스펙 쌓기에 바쁘다. 수백 대 일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공무원 임용 시험에 많은 취업 준비생이 몰리는 것은 안정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나마 다른 부대조건 없이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장이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 일부 대기업이 시행하고 있는 입사 제도는 바꿔야 한다. 이미 입사 원서의 자기소개서는 물론, 합격 뒤에도 인턴이나 수습 등의 명목으로 합숙 훈련 등을 통해 충분히 개인을 검증하고 있다. 아직도 부모의 학력과 직업, 현직 등을 묻는 전근대적인 입사 지원서를 요구하는 대기업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스펙만으로도 모자라 부모의 학력과 직업까지 반영한다면 대기업은 개인의 능력은 물론, 부모까지 모든 것을 갖춘 지원자만 뽑겠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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