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실패한 인생을 위한 진짜 敬老(경로)

사무실에 폐지를 가지러 오는 어르신이 계신다. 폐지 양이 꽤 되는 날에는 그렇게 표정이 좋으실 수가 없다. 행여나 다른 어르신이 먼저 가져가 허탕을 치신 날에는 속상해하시며, 매주 올 테니 다른 사람 주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신다.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차곡차곡 모았다가 오시면 가져가시라 드리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어르신이 오시지 않으면서 쌓아두었던 폐지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기껏 모아놨더니 왜 오시지 않지?'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실실 났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서도 오시지 않자 덜컥 걱정이 되었다. 혹시 잘못되신 건 아닐까 하고.

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홀몸 어르신 반찬봉사를 한다. 두 분에게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 드렸는데, 한 분이 몸이 아파 병원에 계셔서 최근에는 한 분만 반찬을 갖다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아픈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쓸쓸한 말년은 외롭고 힘겹게 저물었다. 그래도 자식이 있어 장례는 치렀다고 하니 정말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위의 두 어르신의 인생은 어찌 보면 '실패한 인생' 일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 65살이 돼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것이다"라고 말했던 김용하 전(前)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의 발언에 비춰보면 그렇단 말이다. 노후 준비를 차곡차곡 잘하신 분이 폐지를 주울 리도 없고, 혼자 볕도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노년을 쓸쓸히 보낼 리 없다. 모아둔 자산이 있고, 연금준비 잘하고, 자식들도 부모 잘 만나 승승장구하는 인생들 눈에는 기초연금을 받는 대다수 노인이 '실패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보험광고에서 말하듯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 리어카의 고물무게만큼이나 노인들의 삶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다. 배움에도 차별이 있던 시절,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고, 몇 남 몇 녀 자식들을 있는 힘을 다해 키웠다. 그 자식 중 몇몇은 또 땅을 치고 가슴에 묻었으리라. 노후 준비? 정말 그건 턱도 없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식들이 부양할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자식들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괜히 짐만 되는 것 같다. 몸은 아파오고, 아무런 준비도 한 것이 없는데 그렇게 황혼은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노인빈곤 문제와 사회적 소외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시대를 반영하듯,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65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을 대표적인 복지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되었다. 당선에 노년층의 뜨거운 지지가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다른 복지 공약(公約)과 함께 공약(空約)이 되어 '분리수거'되고 만다.

정부에서는 우선 어려운 노인부터 지급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초연금은 2007년 연금개혁 당시 향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삭감한 데 대한 보완책으로 도입되었다. 줄어드는 국민연금만큼 기초연금을 보장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인 것이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겠다는 정부의 방안대로라면 일정 수준의 국민연금 수급자는 상당히 적은 액수의 기초연금만 수령하게 되고, 사실상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노인도 서류상으로 이를 증명하기 어렵다면 감액된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이는 기초연금 도입의 기본취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노인빈곤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기초연금문제는 현재 노인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또한 매년 10월은 '경로의 달'이기도 하다. 이와 중에 경로당 냉'난방비 293억 전액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노인에 대한 관심과 공경이 양로원가서 손 한 번 잡아주고, 사진 한 번 찍는 것으로만 그쳐서야 되겠는가? 언제까지 국가재정 부담을 이유로 국민들의 안정된 노후생활에 대한 권리를 외면할 수 없다. 노인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진짜 '경로'다.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adultbaby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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