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올해도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의학도를 대상으로한 수필 공모전이 있었다. 대상은 '고갱의 그림에서 재회'라는 글이 차지했다. "나는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앞에서 그림이 쏟아내는 에너지를 무방비 상태로 맞고 있었다…."로 글은 시작됐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와 왼쪽 구석에 그려진 죽음을 앞둔 늙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삶과 죽음이 동시에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고 쓰면서 분만실에서 경험한 아기의 탄생과 해부학 실습실에서 본 사체(死體)에서 '생명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는 명제를 추적했다.

"분만장에서 아기가 난산(難産)으로 힘들게 태어나는 동안 아기를 받는 의사 선생님 못지않게 가슴을 조이며 용을 썼다. 출산하여 안도하는 순간 아기가 한참 동안 울음을 터트리지 않고 숨을 쉬지 않았다. 간호사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아기를 문질렀다. 아기가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자 소아과선생님들과 함께 급히 분만실을 빠져 나갔다.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 나는 잊지 않고 가장 먼저 그 생명을 축복했다…."라고 썼다.

"해부학 실습실의 시신에서 처음 죽음을 경험했다. 사체는 고갱의 그림 속 늙은 여인과 닮았다. 동맥과 정맥을 박리하고 관찰하면서 그 길을 따라 뜨거운 피가 흘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멈추어버린 몸 속의 모든 장기들, 보지 않는 눈과 듣지 않는 귀, 그것들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생명이 빠져나간 인간의 육체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고, 감흥도 느낄 수가 없었다.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득 실습에 집중하고 있는 동기들에게서 반짝반짝 빛나는 빛을 봤다. 그것들은 산자에 존재하는 생명의 단서였다. 죽은 자를 통해서 생명이 얼마나 보석같이 빛나는 것인가"를 깨달았다는 글이다.

3회에 걸쳐 학생들이 수필공모전에 출품한 글들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해부학 실습실, 응급실, 수술실, 분만실, 정신과병동 및 요양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성 상실을 다룬 글들이 많다. 의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과목을 선택할 때에는 생명에 관계되는 과(科)를 기피한다. 해부학 지식이 가장 필요한 외과를,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응급과나 산부인과를 선택하려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의과대학생의 인성이 잘못되어서인가? 사회제도가 그릇되어서인가?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