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6명. 2010년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준으로 전국에서 선출된 기초자치단체장(228명)과 기초의회의원(2888명)을 합친 숫자다. 내년 6월 선거에서도 이 숫자는 비슷할 것이다.
흔히 아무리 작은 선거라도 당선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3대가 덕을 쌓아야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선거는 후보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가족, 친구, 친지, 이웃들이 모두 참여하는 빅 이벤트다.
앞의 숫자는 당선자의 수다. 적어도 2, 3명이 겨루는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다. 4인 가족이라면 선거에 뛰어드는 사람은 줄잡아 3만 5000 명 선. 여기에 친구, 친지들까지 포함시킬 경우 직간접으로 선거운동에 관여할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10만~20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이는 정당 공천이 있었던 경우의 숫자다. 정당 공천이 없는 자유경쟁이라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이 지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기초 단위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권자를 직접 상대해야 할지, 아니면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에게 줄을 대기 위해 서울을 들락날락해야 할지 몰라서다.
물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예외다. 이들은 진작에 서울행 KTX를 탔다. 하지만 정당과의 인연 맺기에는 재주가 없지만 지역사회 여론에는 자신 있다며 '무공천이면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수많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해 있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 지방선거 역시 '서울의, 서울에 의한, 서울을 위한' 지방선거로 결론이 날 공산이 크다. 서울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여의도 정치권이 쥐고 흔드는 공천이 될 것이고, 당선자는 자신을 찍어준 지방 사람보다는 공천을 준 서울 사람들만 쳐다보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민폐다. 이런 민폐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눈치 없는' 시골 사람들의 애간장은 타들어 간다. 차라리 "공천 제도는 그대로 간다"고 발표라도 해주면 일찌감치 미련도 기대도 정리하고 보따리라도 쌀 텐데. 아무런 신호가 없으니 선거 준비를 하기도 그렇고, 포기하기도 아깝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후회도 많이 된다. 정당 공천이 곧 당선증이라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국회의원이나 실력자에게 줄이라도 댔을 텐데. 정당 공천이 없으면 해볼 만하다고 선거 준비를 해 온 사람들만 바보가 될 상황이다. "국민도 속고, 언론도 속고, 후보자들도 속았다"고 할 만하다.
한 달 전쯤 전직 재선 국회의원과 전직 국회 수석 전문위원 등 두 사람과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은 집권 여당의 핵심 당직자를 지냈고, 다른 한 사람은 국회 사무처 근무 30년 경력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 모두 국회를 손금 보듯이 하는 분들이었다. 내년도 지방선거 이야기가 주된 소재였다.
먼저 질문을 던졌다. "정당공천제 폐지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느냐?" 두 사람의 반응은 입을 맞춘 듯했다. "폐지는 원래부터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질문은 기자 개인의 '희망 사항'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정당 공천이 폐지되지 않으면 진정한 지방자치는 있을 수 없다는 지방 사람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단칼에 좌절이 돼 멋쩍었다. 뒤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200가지나 된다는 많고 많은 국회의원 특권 가운데 꼭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선택할 것이다." 낙담했다. 다른 특권은 다 포기해도 공천권만큼은 안 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만고불변의 진리를 가벼이 본 데 대한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밥그릇을 빼앗기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갓난아이들도 우유병을 물렸다가 뺏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 법이다. 하물며 돈이 걸려 있고, 권력과 연관이 있고, 이권마저 얽히고설킨 국회의원들의 밥그릇을 그냥 내놓으라고 했으니. 아직 세상에 대한 공부가 부족함을 절감했다.
정치권에 주문 사항이 하나 있다. '정당 공천 폐지 불가'를 공식적으로 선언해라. 또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한다는 유감 표명이나 사과 성명이라도 해라. 가급적 높은 사람이 해주면 더 좋겠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하루빨리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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