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호주 캥거루 스테이크

"소·양보다 지구 환경에 유익"…치밀한 논리로 마스코트 식용화 성공

호주 전통음식 전문 맨리그릴 레스토랑 종업원 크리스티나(27) 씨가 접시에 담아 낸 캥거루 스테이크와 악어 꼬리구이 메뉴를 자랑하고 있다.
호주 전통음식 전문 맨리그릴 레스토랑 종업원 크리스티나(27) 씨가 접시에 담아 낸 캥거루 스테이크와 악어 꼬리구이 메뉴를 자랑하고 있다.

호주의 전통음식으로 첫 번째 꼽는 것은 캥거루 스테이크이다. 그러나 캥거루 고기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식용화 되지 못했다. 호주의 마스코트인 캥거루는 1993년 식품으로 승인받은 뒤 약 20여 년 만에 호주를 찾은 관광객들이면 누구나 먹고 가는 호주 특산 음식으로 자리를 굳혔다. 캥거루뿐만 아니라 호주 사막에 야생낙타가 늘어나자 낙타 고기도 관광상품화했다. 심지어 호주산 악어 고기도 포장유통하고 스테이크 재료로 쓴다. 야생동물 고기를 활용한 호주의 특산음식 세계화 사례를 곰곰이 따져 보면 향토특산물 산업화를 위한 벤치마킹 소재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범세계적 홍보전으로 호주 마스코트 캥거루 식용화

호주 정부는 캥거루를 식용화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야생 캥거루의 개체 수 조절을 유도해 생태계 균형 유지와 향토특산물의 산업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호주 인구 2천만 명보다 무려 3배나 많은 6천만 마리로 늘어난 야생 캥거루는 호주 대륙 로드킬(Road kill) 교통사고의 주범이었다. 아직도 전체 교통사고의 60%가 캥거루에 의한 사고일 정도로 골칫거리이다. 호주 도로변에 숱하게 세워져 있는 캥거루가 그려진 노란색 도로 표지판은 캥거루 보호구역 표시가 아니라 길에 뛰어드는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경고판이다.

또 캥거루는 가끔 사람도 공격해 인명피해를 심심찮게 낸다. 몸무게가 100㎏에 육박하는 야생 캥거루는 9m나 튀어오를 정도로 힘이 세다. 보통은 소처럼 온순하지만 자극을 받아서 놀라 날뛰게 될 경우 당해 낼 재간이 없다.

단순히 교통사고나 사람에 대한 공격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주 정부가 캥거루를 '잡아먹자'는 식용화 조치를 한 것이 아니다. 그 당위성을 얻어내기 위한 준비과정을 보면 기가 막힌다. 호주 정부는 먼저 환경단체들의 토론회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소와 양의 트림과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로 비롯되니 호주부터 온실가스의 주범인 소와 양의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범세계적이고 거창한 논리로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이 여론을 토대로 '그러니 필요한 고기를 호주특산 캥거루에서 얻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역적인 논리를 펴나갔다.

동물학자들을 통해 캥거루의 온실가스 배출은 소나 양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방귀량이 적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그래서 인류 미래의 가축은 캥거루여야 한다고 지구촌 공익적 가치를 주장해 호주 마스코트에 대한 식용조치를 마치 우리가 개고기를 양성화하는 것 마냥 극렬하게 반대하던 동물보호단체들의 저항도 거뜬히 무력화시켜 잠재웠다.

"원래 캥거루 고기는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음식의 주 재료였지요. 그러니 다시 식용으로 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자연산이잖아요."

뉴질랜드 교민으로 시드니에 살고 있는 제이슨 김(32) 씨는 직장동료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두 번쯤 캥거루 스테이크를 즐긴다고 했다. 호주 정부가 캥거루 고기가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고 지방이 적어 소고기나 양고기보다 영양학적으로 월등하다고 홍보해 온 것이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호주의 대표동물이라는 상징성에 호주 국민들의 정서적 거부감도 만만찮았지만 캥거루 고기는 웰빙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차츰 스테이크와 스튜로 요리되면서 자연스럽게 호주 특산음식으로 자리 잡아 이제는 호주를 찾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즐겨 먹는 관광 음식으로 자리 굳혔다. 벌써 서울 광화문 등 국내에도 호주산 캥거루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와 스튜 요리 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참새구이 맛 캥거루 스테이크, 치킨+생선 맛=악어구이

캥거루 스테이크 집을 찾아가는 길. 정기여객선은 오페라하우스 부두를 떠나 하버브리지를 스쳐서 시드니 남쪽 맨리(Manly)라는 해변가에 도착했다. 맨리 사우스 스테인이라는 곳에 위치한 '맨리그릴'(Manly Grill) 레스토랑은 캥거루 스테이크로 유명한 집이다. 마중 나온 이 레스토랑 매니저 맥스 도브로 커럿(36) 씨는 일행에게 캥거루 스테이크보다는 '크록 & 루'라는 메뉴가 있는 데 캥거루 스테이크와 악어요리를 다 맛볼 수 있다고 권한다. 크록(Cloc)은 크로커다일(Crocodile)의 앞글자고 루(Roo)는 캥거루(Kangaroo)의 뒷글자를 따서 메뉴 이름을 지었다.

그는 요리사들이 캥거루 스테이크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 주겠다며 주방으로 안내한다.

캥거루 스테이크는 먼저 캥거루 고기를 스테이크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 그릴에 올려 굽는다.

"로즈메리와 발사믹 소스를 사용해 캥거루 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지요."

굽기 전까지 캥거루 특유의 냄새를 줄이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여러 차례의 숙성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릴에 지글지글 굽히는 냄새는 소고기처럼 고소하다. 악어 스테이크는 편으로 살을 발려 둔 악어꼬리 부분의 고기를 이용한다. 닭 가슴살처럼 하얀색의 악어고기는 그릴에 구워 내도 희다. 캥거루 고기가 익을 때쯤 악어고기를 얹어 불기운만 씌워 접시에 함께 담아 낸다. 커럿 씨는 악어고기는 캥거루와는 달리 금방 구워진다고 설명한다.

"뼈 붙은 소갈비 스테이크는 저희 레스토랑의 명품메뉴입니다." '립 아이'(Rib Eye)라는 이름의 소갈비 스테이크는 그냥 서비스로 낼 테니 캥거루 스테이크와 맛을 비교해 보란다. 립 아이는 120일 동안 최고급 사료로 사육한 소에서 최상급 고기를 얻어 재료로 쓴다고.

먼저 캥거루 스테이크 한 점을 잘라 입에 넣으니 마치 참새고기를 먹는 것처럼 고소한 맛이다. 씹히는 식감도 소고기와는 딴판이다. 매우 부드럽다. 약간의 특이한 냄새도 어디서 경험한 듯 거부감보다 오히려 친숙하다. 냄새라기보다 해초의 향과 비슷하다. 그릴 직화구이여서 그런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쪄 낸 듯 육즙이 풍부해 아주 특별한 스테이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 스테이크와 번갈아 먹어가며 비교해 보니 육즙이 많아도 고기의 느끼함이 없는 게 참 신기했다.

"소금을 쳐 보세요. 감칠맛이 더 강해집니다. 생선 맛과 치킨 맛의 조화가 바로 크로커다일 스테이크이지요." 매니저 커럿 씨의 표현처럼 악어 구이는 의외로 쫄깃한 게 감칠맛이 난다. 파충류라서 그런지 생선과 새 종류의 중간 맛. 맛과 빛깔도 닭고기를 닮았지만 질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육질이 쫄깃한 게 다르다. 종업원이 '브르라이'라는 디저트에 불을 붙여서 식탁으로 가져온다. 카스타드 크림 위에 설탕을 얹고 오븐에 녹여서 딱딱하게 만든 프랑스식 디저트. 케이크처럼 불을 끄고 먹는다.

◆캥거루, 낙타, 악어 고기. 굽기만 하면 팔리는 시드니

호주 정부는 캥거루에 이어 낙타도 식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호주 낙타는 19세기 말부터 중동에서 들여 와 호주 사막에 풀어놓아 야생화 된 귀화동물이다. 천적도 없는 호주 사막에서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 현재 약 1백만 마리에 이른다. 단일국가로는 세계 최고로 캥거루와 마찬가지로 호주의 새로운 사고뭉치. 사막의 식물을 마구 뜯어먹어 황폐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캥거루 스테이크로 재미를 톡톡히 본 호주 정부가 낙타 스테이크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리 없는 것. 낙타 고기 역시 맛이 소고기와 비슷하고 영양가가 풍부해 식용으로 이용해도 손색이 없다고 홍보하고 있다.

맨리그릴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호주산 악어 크로커다일 스테이크처럼 이미 악어 고기는 호주 관광지마다 전문 레스토랑이 들어설 정도로 보편화 되어 있다. 얇게 편으로 발라져 비닐 진공 포장된 악어 꼬리고기는 마트에서도 쉽게 구입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호주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현실은 어떤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야생 멧돼지는 허가 난 수렵으로 포획한 것 이외에는 식용화 되지 못하고 있다. 개체 수가 폭증하면서 농작물 피해는 연중행사인데도 민가로 내려오거나 도심을 종횡무진하는 야생 멧돼지가 사살되면 땅에 묻는 방식으로 폐기처분해야 한다. 멧돼지 사체에서 귀하다는 쓸개라도 살짝 떼어 냈다가는 큰 망신을 당한다. 우리도 산악지대가 많아 자원이 풍부한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멧돼지 스테이크를 특산화 한다면 어떨까. 개고기 특산화보다는 쉽지 않을까.

현재 고속도로와 국도에서의 로드킬 주범인 고라니도 마찬가지다. 사슴과 노루와 같은 종이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먹기를 꺼리는 산짐승으로 식용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중국 등 외국에서는 쏘가리에 버금가는 식용어종으로 각광받는 대형 민물고기 배스(Bass)도 안동호 등 강과 호수에 넘쳐나고 있지만 먹을 수 없는 물고기로 인식하고 있다. 단지 낚시꾼들이 손맛만 보고 버리는 물고기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꿩이 가축으로 분류된 게 겨우 불과 4년 전입니다." 꿩 요리 전문식당을 20년째 해오고 있는 김주석(56.안동시 이천동) 씨에게 물어보니 불법으로 장사를 16년이나 하고 나서 지난 2009년 농립수산식품부 고시로 가축으로 정해져 겨우 양성화됐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 주도적으로 식용화 한 호주 캥거루와는 너무도 딴판이다.

석양빛이 서리는 호주 시드니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주변 바다에 요트와 쾌속정이 미끄러지듯 내달린다. 대형 크루즈선박이 정박한 미항 시드니는 호주 애완동물 캥거루 고기도 관광 음식으로 만든다. 호주산 소고기로 비프스테이크 굽던 그대로 캥거루 고기, 낙타 고기, 악어 고기도 그저 구워 놓기만 하면 팔린다.

호주 시드니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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