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의료기기 리베이트 보도 후 단상

지난 7월 귀에 솔깃한 정보가 입수됐다. 대구지역 한 2차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가 리베이트 수수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이 때문에 지역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는 첩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의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의료를 담당하는 선배 기자와 함께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얘기해 줄 수 없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아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방향을 돌려 의료계 등을 통한 취재에 나섰고, 다행히 충분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검찰에 취재 내용의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의료계를 통해 취재한 내용과 검찰로부터 확인받은 '팩트'로 마침내 첫 보도를 하게 됐다. 전국 첫 보도였고, 그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거웠다.

의료계와 의료기기업체 등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더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언론들도 검찰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갔고, 검찰은 '수사 중인 사건이라 기다려 달라'며 급히 '엠바고'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검찰의 수사 진행에 따라 이런저런 정보가 속속 입수됐고, 수사가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보도를 해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본능과 '수사를 방해해선 안 된다'는 양심 사이에서 속을 태우던 중 먼저 수사 대상이 돼 조사를 받은 의사 등 몇몇이 법원에서 선고를 받은 사실을 접하고, 이를 토대로 아끼고 아꼈던 '속보'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달 21일 마침내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수사 시작 4개월 만이다. 한 의료기기 제조'판매업체와 의사 등 총 55명이 연루된 의료기기 리베이트의 전말이 드러났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의사만도 전국 38개 병원에 44명이나 됐고, 주고받은 돈도 78억원에 이르는 대형 '의료기기 리베이트 게이트'였다.

대형 사건인 탓에 '의료기기업체가 어떻게 했느니, 의사가 어떻니' 등 많은 얘기가 오갔다. 그런데 정작 사건의 핵심은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환자들이 그동안 필요 이상의 돈을 병원에 갖다줬다는 게 이 사건의 본질인데 이들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재발 방지에 대한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업체와 의사들이 한통속이 돼 환자들 주머니에서 돈을 더 빼내 '자기들 배만 불려왔는데' 환자들은 이를 알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분노를 느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사건에 연루된 의사와 업체도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들 입장에서 '참 나쁜 사람들'이지만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한 것 같아서다. 의사들 경우 밤잠 못 자고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됐고, 열심히 연구하고 일해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는 의사가 됐는데, 리베이트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범죄자가 되는 비극적인 인생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사들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의사'라는 게 검찰의 얘기다. 업체가 소위 '잘나가는' 의사들에게 로비해야 의료기기를 많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업체도 마찬가지다. 검찰에 따르면 이 업체의 제품도 해외에 수출까지 하는 우수한 제품인데, 리베이트를 줘야만 팔 수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이쯤 되면 '관행'이니 '보상심리'이니 '생존'이니 하는 말로 자기합리화해 주고받는 리베이트에 대해 의료계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정부가 아무리 '쌍벌제'를 도입해도 의사 스스로 결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리베이트의 마수에 걸려들 수 있다. 환자도 손해, 의사도 파멸로 몰고 가는 리베이트가 계속 이어진다면 환자들의 불신과 의사 범죄자만 쌓여갈 뿐이다. 이번 사건이 의료계에서 리베이트가 사라지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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