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채명신 장군을 보내며…

고대 로마에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뒤따르는 전쟁 포로들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끊임없이 외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라틴어인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정도의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아는 바가 적어서, 처음에는 전쟁 포로들이 곧이어 닥칠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한탄하며 울부짖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전쟁 포로의 운명은 사형 아니면 노예로 전락할 것이 뻔한 만큼, 이들의 입장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저의 이런 상식적(?) 해석은 완전히 엉터리였습니다. 전쟁 포로들이 그토록 크게 울부짖는 '메멘토 모리'는 바로 영광과 환희로 인생의 최정점에 선 개선장군한테 하는 교훈의 말이었습니다.

"지금 네가 전쟁에서 승리해 우쭐하며 교만스럽게 개선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들(전쟁의 패배자)처럼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노예로 끌려갈 때가 올 것"이라는 경고의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자성어인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과 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감히 전쟁 포로 주제에 개선장군한테 이런 말을 하도록 하는 로마의 풍습이 놀랍습니다.

'군인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가장 참담한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라'는 이런 풍습이 로마를 세계 대제국으로 키운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용맹한 장군은 나라의 기둥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삶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달 28일 우리는 채명신(1926~2013) 장군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채명신 장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었고, 초대 주월(베트남) 한국군 사령군을 지냈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전쟁 영웅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보는 이들도 있겠다는 생각 정도였습니다.

채 장군의 삶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장군 묘역이 아닌 병사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고(故) 채명신 예비역 중장'이라는 명칭 때문이었습니다. '왜, 예비역 대장이 아니고 중장이지?' '장군이 일반 사병의 묘역에 같이 묻히기를 원한다?' 5'16 군사혁명(주동자 입장에선)의 동지이자 전쟁 영웅인 채 장군 정도면, '대장'은 물론이고 '국방장관'과 '총리'를 지내도 몇 번을 지낼 만한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고 채 장군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풍문조차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음에도 1972년 유신을 끝까지 반대했고 대장 진급에 탈락해 전역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채 장군에게 5'16은 권력을 잡아 출세하기 위한 쿠데타라기보다 혁명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혁명의 진정성을 그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줬으니까요.

채 장군이 자신의 뜻대로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 곁에 묻힌 것은 정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마터면 병사 묘역에 장군이 묻힌 전례가 없다는 관료주의 때문에 고인의 뜻이 훼손될 뻔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채 장군의 유언이 담긴 서신을 보고 "고인 유지대로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며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두 세대에 걸친 인연이 아름답게 마무리된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삶이 끝난 뒤 남겨 둔 화려한 무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삶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들 하곤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채명신 장군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좌우 이념을 떠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채 장군의 삶은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현대사에 채명신이라는 멋진 장군이 있었다는 말을 전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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