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겨울 노래-마종기(1939~ )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 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시집 『이슬의 눈』(문학과지성사, 1997)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매달릴 소매 한 자락 없다. 천길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데 잡을 지푸라기 한 올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낫다. "텅빈 객석"을 향해 욕을 하든지 뭐를 하든지 마음껏 소리칠 수 있으니까. 목청껏 노래 부를 수 있으니까. 눈치코치 볼 일 없이 눈물콧물 범벅으로 하소연할 수 있으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돌아버릴 것 같아서.

백기완 시인은 시를 '비나리'라 했다. 하늘에다 대고, 허공에다 대고 말 못할 사연을 마음껏 풀어내는 말이 비나리고 시라 했다. 시는 그런 노래다. 어두울수록, 추울수록 노래는 절창에 가까워진다. 고통의 무게에 비례해서 가슴을 뚫고 나오는 울림도 오르내린다. 철저하게 혼자일수록, 혼잣말일수록 진실에 육박한다. 이런 비나리를 문자로 옮기면 시요, 곡을 얹으면 노래가 된다는 말이다.

마종기 시인은 노래가 끝나는 곳에 평화가 있다고 한다. 겨울 벌판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생지옥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애인이 없어서, 가난해서 오히려 "어렵고 두려운" 겨울을 건너갈 수 있다는 역설을 역설하고 있다. 지금 없는 것-꿈-이 지금 있는 것-고통-을 이긴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의 힘이다. 비나리이고, 시이며, "겨울 노래"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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