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섬유+부산 신발 = 성공가능성 무한대

사양산업 명예회복

대구의 특수섬유 제직전문 업체인 성재섬유가 안전화 밑창의 방침 철판(못을 밟아도 발이 안전할 수 있도록 신발 밑창에 까는 강철재질의 밑창)을 대체할 수 있는 섬유복합체를 개발하자 부산의 안전화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기존 방침 철판을 사용한 안전화의 경우 강철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너무 무거워 작업자의 피로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밑창 고무소재와의 접착불량과 부식 그리고 파상풍 등 2차 오염이 심각했었는데 성재섬유의 신소재 개발로 모든 문제점을 단숨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한때 사양산업(斜陽産業)으로 취급받았던 섬유산업과 신발산업이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섬유와 신발은 피나는 노력 끝에 혁신에 성공하며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지만 '융합'이라는 처방이 톡톡히 효험을 발휘하고 있다. 둘을 더했더니 둘 이상의 가치가 만들어졌다. 섬유산업 분야에서 잇따라 기능성 신소재 섬유를 내놓자 신발산업의 숨통이 트였다. 저가공세를 펼치던 중국, 인도 등 신흥공업국 생산제품들과의 차별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구와 부산을 대표하던 두 산업이 재기에 성공함에 따라 지역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산업간 융합은 경쟁력 확보 수단

'섬유산업과 신발산업의 상호협력'이라는 묘안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머리에서 나왔다. 윤 장관이 차관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1월 섬유와 신발 등 이미 여건이 성숙한 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두 산업의 '융합'을 시도하기로 했다.

섬유산업과 신발산업의 경우 두 산업이 우리 경제를 이끌 당시 구축한 다양한 생산기반 시설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축적된 기술력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들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불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업종을 개발해야 하는 공통의 과제도 함께 안고 있었다.

산자부는 양 영역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방식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신발의 재료로 사용되는 섬유가 달라진다면 신발도 달라질 수 있고 고부가가치 기능성 제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섬유산업이 신발산업에 새로운 활로를 뚫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산자부 관계자는 "산업간 융합을 통한 기존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이미 선진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신성장전략"이라며 "지역경기 활성화와 산업고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융합의 가시적 성과 도출

산자부의 예상은 적중했고 나름의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두 산업의 융합에 따른 시너지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의 섬유소재 전문업체인 ㈜삼광염직은 기존 천연가죽 신발 소재가 무겁고 물에 잘 젖는다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아라미드 섬유를 안전화, 전투화 등에 쓰이는 신발 갑피소재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재는 내열성과 강도가 우수하다. 삼광염직의 도움을 받은 ㈜트렉스타는 이 기술을 공군 조종사용 군화에 적용해 200켤레를 시범적으로 납품하는 쾌거를 거뒀다.

아울러 산업용 섬유소재 전문업체인 대구의 삼성교역㈜는 기존 가방의 원료가 되는 고강도 섬유소재를 활용, 스키'스노우 부츠용 섬유소재를 개발해 동계 스포츠화 시장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 스키 부츠 제품에 비해 신기가 편리하고 가벼우며 가격도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또한 산업용 섬유소재 전문업체인 대구의 ㈜거성산업자재는 기존 신발 갑피소재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형광 색상이 변하거나 물이 빠지는 등의 소비자 불만을 접수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한 신발 갑피용 형광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개발해 신발 갑피원단 제직업체에 공급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 중이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산자부는 두 산업과 지역 간 협력의 공감대 형성에 공을 들였다. 연구기관, 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먼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대구'부산지역 섬유소재 및 신발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 세미나, 간담회를 개최하는 한편 기업 지원을 위한 전문가 자문그룹까지 구성해 양측의 협력을 도왔다.

먼저 대구'부산지역의 기업체 80여 개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벌였다. 섬유제품 가운데 신발용으로 활용이 가능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섬유류 중에서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신발소재로 전환이 가능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원사 및 패브릭기술)과 다이텍연구원(염색 및 고차가공)이 섬유분야의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있으며 신발분야는 한국신발피혁연구원이 융합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맡고 있다.

◆광역경제권 동반성장의 성공모델 가능

산자부는 섬유와 신발산업의 융합을 통해 두 산업이 모두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각광받을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연구개발비가 많이 소요되는 데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이 같은 정책이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뿐만 아니라 신발산업의 가격경쟁력을 위해서는 섬유산업이 제공하는 소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봉제기술과 마케팅 전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여타 산업과의 추가 융합도 필요한 실정이다.

산자부는 산업융화 프로젝트에 더 많은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면 섬유-신발 협력사업이 광역경제권 동반성장의 성공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항의 제철산업과 구미의 전자산업, 구미의 전자산업과 울산의 자동차 산업, 대구의 섬유산업과 구미의 전자산업 등이 융합해 더욱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나아가 산자부는 산업간 융화정책이 우리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것은 물론 지역 간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지역 간 갈등과 분쟁들이 산업융화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