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중독

며칠 전 '알코올, 마약, 도박, 게임'을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한 법안의 심의가 보류됐다. 이 법안에서 미래산업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는 게임이 알코올, 마약, 도박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면서 많은 문제를 노출했기 때문이다.

'4대 중독 물질'과 같이 여러 개의 대상을 하나로 묶어서 테두리를 짓는 것을 분류라고 한다. 분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테두리 안에 있는 것끼리는 강력한 결속력이나 공통성이 있어야 하고, 테두리 밖에 있는 것과는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라는 테두리로 묶을 때, 매출이나 종업원 수 등을 기준으로 나누면 대기업 꼴찌나 중소기업 1등이나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면 중소기업과는 사회적 인식이나 의무가 크게 달라지고, 대기업끼리의 동류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게임을 4대 중독 물질로 지정했다는 것은 게임이 알코올, 마약, 도박과 공통성이 많고, 흔히 중독성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담배, 커피, 주식, 인터넷, 스마트폰, 성형 등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약이나 도박은 그 폐해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예 할 수 없는 것이다. 술과 담배는 국민 건강에 저해가 되는 것이지만 막대한 세금의 원천이기 때문에 게임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을 그냥 중독성이 있다는 것으로 묶어 놓으면 4대 중독 물질이라는 테두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마치 세계 3대 스포츠 축제라고 대구에서는 세계육상선수권을,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을, 전남에서는 F1이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같다. 올림픽, 월드컵이라는 1, 2등과 너무나 차이가 크고 4, 5등과는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3대 스포츠 축제라는 분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분류가 엄격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는 게임이 있는 자리에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 마트에서 거지 같은 표정으로 레고 코너를 떠날 줄 모르는 아들을 보면 게임보다 레고 규제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 와서 컴퓨터 4분할 화면으로 야구 중계만 보고, 주말엔 사회인 야구 한다고 나가며, 월요일에는 금단 증세를 보이는 나를 보면 아내는 야구를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주군의 태양'을 보며 '꺼져'라는 대사에도 열광하는 아내를 보면 나는 배우 소지섭 씨의 출연을 규제하거나 그가 나오는 드라마에 경고 문구를 삽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남자 아이돌에 열광하고 아이돌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데 열중인 딸을 보고 있노라면 (걸그룹을 제외한) 가수들은 노래 실력순으로 데뷔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담배를 빼고 게임을 넣어서 '4대 중독 물질'이라는 분류를 한 발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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