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장후보 발탁부터 불출마 선언까지…김범일 스토리

70%대 지지로 2選…대구 성장엔진 달아

17일 3선 도전을 포기한 김범일 대구시장은 1950년 예천에서 태어났다. 예천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초교로 옮겨와 경북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이 당시를 "왕따는 아니지만 대구와 예천의 사투리가 다르기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했다"고 회상했다.

김 시장은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몸을 담았다. 미국 남가주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과 산림청장을 지냈으며,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휘장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김 시장은 2003년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다. 산림청장을 지낸 그는 내각 입성 가능성이 있는 TK인사로 꼽혔다. 김 시장은 정무부시장에 취임해 2년 7개월을 재직했다. 그는 "보람도 많았고,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면서 "경제'환경'교통'교육'문화 등에서 대구가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탠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정무부시장 하마평에 오르내릴 당시 그가 민선 대구시장을 꿈꾸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소문은 사실이 됐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김 시장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서상기 의원과 신주식 전 CJ그룹 부사장을 따돌리고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2006년과 2010년 선거에서 김 시장은 연이어 70%대의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다. 2006년 4회 선거에서는 70.15%를 득표했고, 2010년 5회 선거 역시 72.9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김 시장은 스스로 핵심프로젝트로 추진한 국가산업단지 본격 공사, 첨단의료복합단지 핵심인프라 준공, 혁신도시 및 테크노폴리스 기반조성 완료 등으로 대구 미래 성장 엔진을 마련한 점을 업적으로 꼽고 있다.

국내외 불확실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경제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지속적인 채무 감축 노력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 것도 성과라고 평가받고 있다.

또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3 세계에너지총회 성공 개최 등 국제행사를 통해 대구 도시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시민회관 리노베이션, 대구예술발전소 개관 등으로 문화예술 경쟁력을 향상시켰다는 점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취수원 이전과 신공항 건설 등 지역 숙원사업 추진이 지연된 점과 시정성과가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점 등은 아쉽다는 것이 시민들의 여론이다.

사석에서 김 시장은 Y담으로 좌중 분위기를 이끌지만, 공식석상에서는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들어왔다.

시민들은 김 시장의 업적 중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개최를 우선으로 꼽는다. 하지만 첨복단지 등 신성장동력의 효과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들과 시민단체는 "대구가 3대 도시의 위상을 인천에 내준 데다 대구시만의 특별한 정책이나 역동성을 느낄 수 없다"면서 "김 시장과 시민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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