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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달의 맨발-문인수(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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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한참 뭉그적거리다가 저도 한강,

철교를 따라 어설프게 건너본다.

어, 여기 웬 운동화?

구름을 신고 잠깐 어두웠던 달, 다시 맨발이다.

어떤 여자의 발고린내가 차다.

  -시집 『적막소리』,창비, 2012.

문인수의 시에는 시인의 감정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위에서 만나는 소외된 것들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시인의 감정이나 정서가 그의 독특한 시의 문법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

이 시에는 여자의 행적과 달의 행적이 병치되어 있다.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면, 달이 한강 철교 위를 바라보고 있다. 어떤 여자가 머뭇거리다가 한강 철교를 건넌다. 여자는 철교 위에 운동화를 벗어놓고 강에 투신한다. 달은 철교를 건너다가 여자가 벗어놓은 운동화 한 켤레를 본다. 투신한 여자의 운동화이리라. 여자의 운동화에서 삶의 신산함이 느껴진다. 달도 여자처럼 구름신을 신었다 벗는다. 여자의 신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한강에 투신하는 한 여자의 신산한 삶이다. 비극이다. 이 비극 앞에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달도 여자와 같이 신을 벗게 함으로써 비극적 상황을 포근히 끌어안는다. 화자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지만 이미지 제시를 통해 더 큰 감동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달은 예로부터 하늘에 떠 있어 우리 민족의 신앙의 대상이었다. 백제 시대의 노래 '정읍사'에서 보듯이 옛사람들은 달을 보며 자신의 소망을 빌기도 하고 가슴에 맺힌 한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달은 우리 민족의 삶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는 존재였다.

시인의 시선은 항시 소외된 것, 사소한 것에 머문다. 그리고 이들을 달의 미소로 끌어안는다. 그의 언어는 비극적 상황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변환하는 마법을 지녔다. 이를 일러 경지라 해도 될 것이다.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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