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신명호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두 동갑내기 왕이 있었다. 조선의 고종(1852~1919)과 일본의 메이지(1852~1912)다. 두 왕은 엇갈린 운명을 맞는다. 1905년 을사늑약을 기점으로 조선은 망하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 그 운명은 불과 50년 사이에 갈렸다.
고종은 메이지보다 4년 먼저 즉위한다. 1863년이다. 당시만 해도 조선의 국력이 일본에 비해 많이 약하다고 볼 수 없었다. 또 고종은 먼저 즉위한 만큼 메이지보다 국정이나 세상 물정에 더 빨리 눈떴다고 볼 수 있다.
둘의 운명을 가른 것은 동북아시아 질서 변화를 보는 눈이었다. 당시 조선은 대마도주와 왜관을 통해 일본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일본에서 800년간 지속됐던 막부(지방분권) 체제가 사라진다. 대마도주도 없어지고, 왜관은 역할을 잃는다. 이는 조선과 일본의 전통적인 관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일본은 동북아 질서를 재편해 청나라 대신 질서의 중심에 서려 했다. 하지만 조선은 여전히 청나라가 동북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사실 당시 조선은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권력 투쟁을 하며 제대로 된 개화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과거 막부 체제의 주력이었던 사무라이의 기득권을 빼앗고,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한다. 결국 고종은 메이지가 보낸 특사로부터 협박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만다.
여기까지만 보면 메이지가 이뤄낸 근대화는 눈부시다. 하지만 삐뚤어진 '동양 평화'의 명분을 만들고 만다. 일본에 1905년 을사년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보호국으로 두는 등 '화의 근원을 두절시키고 동양 평화를 확립한' 역사적인 해다. 메이지와 이토 히로부미가 보기에 조선은 동양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이었다. 약소국이 평화를 위협하다니? 그 논리는 이렇다. 무능하고 나약한 조선이 서양의 침략을 초래했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려면 조선을 점령해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안중근에게 일본은 조국의 독립을 부정하는 적이자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 평화를 파괴한 전범 국가가 됐다. 메이지의 동양평화론은 틀렸다는 얘기다. 저자 신명호 교수는 "메이지의 동양평화론과 같은 주장이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동북아시아의 평화적인 공존을 위해 이런 주장은 시급히 타파돼야 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543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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