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우리는 아직도 아프면서 죽어간다

치통(齒痛)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다가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하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6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정용량 이상을 올리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심해진다. 이것을 약의 천장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쓸수록 통증조절이 잘 된다. 더군다나 날록손(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마약성 진통제)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 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통증도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마지막 순간에는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남겨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알려주면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도 가느다란 희망을 가진다.

얼마 전 50대 폐암 환자 정구 씨에게 고용량의 진통제를 처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른쪽 가슴 부위의 통증을 다스리느라 한꺼번에 60알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기 때문이다. 나는 60알을 처방한 근거와 마약성 진통에서 고용량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밝혀야 했다.

정구 씨에게 투여한 마약성 진통제의 종류에 대해서도 73만원의 삭감통보를 받았다. 굳이 먹는 약을 쓰면 되는데 몸에 붙이는 패치와 같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먹는 마약성 진통제만을 처방했다면 정구 씨는 한꺼번에 8알씩 매일 죽을 때까지 먹어야 했다.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번거로웠지만, 꼼꼼히 그 이유를 적어 이의신청을 했다. 호스피스병동조차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것이 원활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프게 죽어갈 수밖에 없다.

2008년 기준 국내 1인당 모르핀 사용량은 2.5480㎎으로 세계 42위 수준이다. 전 세계 158개국 평균치인 6.0051㎎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지는 수치다.

아직도 매년 약 7천여 명의 말기 암환자가 제대로 된 통증 관리를 못 받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임종을 맞는다. 환자'보호자'의사'간호사뿐만 아니라 모두가 통증 완화치료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생각할 때다. 살아있는 우리도 언젠가 한 번은 이곳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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