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투표는 역사라는 아이를 해산하는 일

성경은 '세상'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민 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견인하는 동력은 '진리'와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살림'이란, '살림'(살려내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리고 올바른 국가와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진리와 소통입니다. 진리는 결코 타협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만 이 진리를 통하여 사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또한 소통은 표현과 이해와 용납과 공감입니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삶이 다양하고 각기 의견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칫 꼬여 버릴 수 있는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수학과 같은 문제에는 정답이 있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의 소통으로 찾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던가요?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서로 생각과 의견을 수납하고 재단한 결과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치가 있는 것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투표를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후보의 정치공약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가?'로 고민하는 기회가 생깁니다. '투표를 왜 해야 하는가?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몸부림이 현재의 궁핍한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지나온 것이지만 또한 현재를 관통하여 지나가고 있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흘러갈 길을 닦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삶의 터전과 스스로 인권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라는 아이를 해산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낼 의무 역시 평범한 사람, 궁색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권리를 주장해야 할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백색 투표용지에 한 점을 찍음으로 시작됩니다.

한국 사회처럼 극적인 정치 변동을 단시간에 겪은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으로부터 시작한 정치, 사회 변동은 식민지화로 이어졌으며,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4'19혁명, 쿠데타, 다양한 정부의 등장과 출범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장면마다 한국 사회 내의 각 계층과 국민 사이의 갈등과 불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난 역사 속의 비극과 한탄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되지만 잊어서도 안 됩니다. 소중한 사람은 없을 때 더욱 소중해지듯이, 우리는 혼자 사는 것 같지만 '우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하고 행복하지만 안일하지 않고 긴장된 나라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이라는 권리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살리는 것보다 살려내려는 생각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낙관은 모든 유권자들의 사상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필자의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선거철이 되면 많은 후보자가 교회를 방문하여 얼굴을 알립니다. 부끄럽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는 이를 이용해 그 지역 내에서 지위 향상을 꾀하는 왜곡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나라와 민족 앞에 득죄하는 행위입니다. 신앙도 투명해야 하듯이 정치도, 정치에 참여하는 국민도 투명해져야 합니다. 지역의 이익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며, 공동체를 통합시키고 화해시키는 정책을 가진 후보를 지지해야만 합니다. 공명성 있는 투표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구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의와 공법이 실현되는 곳이 될 때 진정한 인간 가치와 존엄성은 살아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남태섭 대구기독교총연합회 회장'대구서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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