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설화 중에 '견묘보주탈환설화'(犬猫寶珠奪還說話)라는 이야기가 있다. 좀 길고 거창해 보이는 이름이긴 하지만 그 이름 그대로 집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가 빼앗긴 보주를 되찾아온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야기는 단순히 보주를 찾아와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보주를 찾아오던 개와 고양이는 강을 헤엄쳐 오던 중에 실수로 물속에 보주를 다시 빠트리게 되고, 우연찮게 보주를 다시 찾게 된 고양이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집 안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개는 집 밖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집 안에서 살게 되고, 개와 고양이의 사이는 급격하게 나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하며 끝을 맺는다.
이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개와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세계 어느 나라든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지인의 강아지를 맡았을 때, '견묘지간'이란 말이 생긴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강아지는 그냥 반가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접근하는 듯했지만, 고양이는 그 행동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성향이 극과 극인 사람이 서로 만나면 가까워지기 힘든 것처럼 개와 고양이의 기본 성향도 너무나 다르기에 서로가 가까워지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올해 초, 우리 집에 강아지 '보리'가 왔을 땐 조금 다르지 않을까도 싶었다. 보리는 작고 정말 어린 강아지였기에, 이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체셔가 훨씬 어린 강아지를 조금은 관대하게 봐 주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가끔 보리 집 쪽 창문이 열려 있거나, 집 안에서 보이는 위치에서 보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집안을 들여다보면 고양이들이 보리를 보고 있긴 하다. 하지만 녀석들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다. 더 이상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도 없으며, 집안에 강아지가 들어오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다. '내키진 않지만 우리 집에 쟤도 같이 살고 있어'라는 인식까지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설득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선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타라'라는 고양이가 이웃집 개에 물린 꼬마 주인을 구해 화재가 됐다. 꼬마의 아빠는 'My cat saved my son'(고양이가 아들을 구했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CCTV에 녹화된 영상을 올렸고, 그 영상 속엔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는 꼬마를 공격하는 개에게 망설임 없이 달려가 쫓아내고, 추격하는 고양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인명을 구하는 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반려인을 구출한 고양이는 드물었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엔 고양이와 개의 보주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보주를 찾아온 고양이가 집안의 예쁨을 한껏 받으며 행복하게 잘 살았듯, 타라도 가족 사랑을 독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야구경기의 최초 시구묘가 될 정도로 유명세도 타게 되었다.
사실, 우리 집 체셔나 앨리샤, 보리 모두 '순하디 순한' 녀석들이기에 타라처럼 위험 상황에서 앞장서서 지켜준다거나, 설화 속 녀석들처럼 재기를 발휘해서 무언가를 대신 되찾아와 주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 하나씩은 우리에게 더해주고 있다. 체셔와 앨리샤가 집안에서의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배가 되도록 힘을 실어 준다면, 보리는 우리 가족의 삶에 발랄함과 활력을 더해준다. 그렇기에 사실 견묘지간은 앙숙 사이라든가, 고양이가 주인에게 보은했다와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녀석들은 그저, 우리 집안의 소소한 행복을 더해주는 '보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