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요양병원들의 의료수준 저하(본지 2012년 2월 21일 자 10면 보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양병원 간의 저가경쟁이 결국 환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포항북부경찰서는 4일 응급환자를 위한 당직의사를 배치하지 않거나 규정보다 적게 배치해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로 포항 북구지역 요양병원 14곳을 적발해 원장 곽모(56) 씨 등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포항의 등록 요양병원 24곳(북구 20곳, 남구 4곳) 중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경찰은 또 행정처분을 위해 적발된 14개 요양병원 명단을 보건소에 통보할 예정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의 경우 환자 200명당 1명의 당직의사를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요양병원 중 10개 요양병원은 아예 당직의사를 배치하지 않고, 응급상황 발생 시 전화를 걸어 의사를 부르는 속칭 '콜당직' 형태로 운영했다.
나머지 4개 요양병원은 환자 숫자가 200명이 훌쩍 넘는데도 당직의사 1명만 배치하는 등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 같은 행태는 요양병원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서 또는 규정에 맞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 벌어진 상황으로 풀이된다. 경찰 관계자는 "요양병원에서 당직의사에게 주는 수당의 반값 정도만 지불하고 콜당직을 쓴 것"이라며 "요양병원 설립 시 의사면허가 필요하지만, 포항지역의 의사 숫자가 충분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나이가 많아 현업에 종사하지 않는 의사들의 면허를 빌리고, 필요한 상황이 생길 때만 병원에 부르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요양병원의 전일 당직의사 수당은 월 1천만원선. 그러나 콜당직을 쓸 경우 보통 600만원 정도가 수당으로 지급된다. 이렇게 아껴진 자금은 환자들의 자부담금을 할인해 주는 등 불법 호객행위에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법상 국민건강보험의 비급여 부분(환자 자부담금)을 불특정 다수에게 감면해주면 불법 유인 행위로 간주돼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자부담금을 할인해 주면서 서류상으로는 미수금으로 분류해 병원 측의 적자액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생긴 적자액은 당직의사 비용을 아끼거나 보다 저급한 의료기구 사용 및 식자재 비용 절감 등으로 다시 메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포항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중증 노인환자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데 드는 자부담금은 월평균 80만~90만원 정도다. 이보다 적게 요구하면 의료 질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면서 "제대로 된 의사를 구하고 싶어도 요양병원에서 일하겠다는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없다. 지역 의료계의 인력수급 및 질적 향상을 위한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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