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프리즘] 계파정치 청산하는 정당개혁이 먼저다

지금 여의도 정가는 헌법을 바꾸자는 개헌론이 화제다. 이달 16일 중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제기한 후, 정치권의 반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개헌 발언 이후 곧바로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꼬리를 내렸지만, 야당들은 대통령께 사과하는 김 대표의 모습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비판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청와대도 개헌론을 막으려고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은 실수라고 보지 않는다'고 경고를 보내고, 친박계도 개헌 반대를 표명하였다. 하지만, 야당의 반론으로 꼬리 잇기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개헌론은 그것을 주도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뭔가 복잡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패권싸움을 예비하는 이슈처럼 보인다.

개헌에 대한 찬성과 반대, 그리고 어느 모델이 좋은가를 떠나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개헌 논의와 그것의 성공 여부는 다르므로 논의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지금의 개헌론이 어느 맥락에서 왜 제기되었으며, 과연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실제적인 개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그림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개헌론은 여느 정권에서도 수없이 제기되었지만 성공한 바가 없다. 그 이유는 대개 '제왕적 대통령제'처럼 운영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치환하여 설득력을 떨어뜨리거나 국민의 실생활과 공공이익과 무관한 정치권만의 기득권 나누기로 비쳐 국민적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갑자기 개헌론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지금부터 불과 2주 전 계파정치와 파벌정치의 늪에 빠진 정치권의 상황과 많은 대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달 13일만 하더라도 여야 모두는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구성을 놓고, 친박과 비박, 친노와 비노 간에 유리한 권력 고지를 향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한마디로 한국 파벌정치의 성숙하지 못한 민낯을 보여주었다. 여야는 한국 정당이 계파정치에 포획되어 특정 계파의 패권과 계파 간의 이익담합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이것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당개혁보다는 조직강화특위를 통해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 조직강화특위는 계파 패권과 담합을 재생산하는 '악의 축'이다. 악의 축을 개혁하기 위한 정당개혁에 대한 논의 대신에 어려운 헌법을 바꾸고자 하는 개헌론에 대한 열성은 대조적이다.

이런 대조적인 상황을 보면, 정치권이 개헌론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당원의 주권과 의원들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계파정치의 해악에 정면으로 맞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잠시 모면하여 숨고 싶은 심정 때문이다. 둘째는 파벌정치와 계파정치의 해악에서 벗어나는 일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권력구조를 변경하는 착시효과로 문제를 회피하거나 패권경쟁을 통해 권력을 적당히 나누고 싶은 심정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현 개헌론의 등장 배경이 국민의 실생활과 공익보다는 계파정치의 폐해를 숨기거나 패권경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지금까지 대립과 갈등, 분열을 보이는 핵심에는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는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파벌정치가 있다. 파벌정치는 공당보다 계파를, 국민과 국익보다는 패거리 진영을, 민생보다는 패권을 우선시함으로써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한편 국가와 정당의 공공성을 위협한다. 이왕 시작된 개헌 논의가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정치권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선 조직강화특위의 진일보를 위해 외부 혁신인사를 추가로 선임하고, 계파들의 공천권 독과점을 당원과 유권자들이 견제하도록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법제화하며, 당원 없는 폐쇄적인 정당을 '시민참여형 네트워크정당'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선의로 수용된다면, 자연스럽게 진영논리를 깨는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도록 해야 한다.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교수·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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