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지하도 계단에 엎드린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깡통 하나 달랑 놓고 구걸하는 까마귀손이다. 지하철에서 눈먼 부부가 찬송가를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누구나 몇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과연 저들의 손에 동전 몇 닢이나 지폐를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묘한 갈등을 겪은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이 오면 가끔 서울 영등포역 앞 '토마스의 집'에 간다. 도착하면 장화부터 갈아 신고 주방으로 간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여름이면 주방 안은 사우나실이었다.
하루 300여 명가량의 노숙인들이 토마스의 집을 찾는다. 어떤 이는 한 그릇을 후다닥 먹고 나가지만, 어떤 분은 감투밥 세 그릇을 먹어치우고도 늑장을 부리며 앉아서 쫄쫄 굶고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뒷사람의 사정을 봐주지 않아 눈총을 받는다. 아까운 밥을 절반도 안 먹고 밥그릇만 헤적거리고 일어나는 이도 있어 30년 최고참 '안나 할머니'(대구 '요셉의 집' 부장 수녀님과 역할이 비슷하다)의 불호령을 듣는다.
나는 '봉사'라는 말이 싫다. 그 속에는 어딘가 우월한 이가 열등한 자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는 어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토마스의 집은 신부님이 주축이 되어 대부분 천주교 신자들의 성금으로 유지된다. 물론 비신자들의 도움도 많으며 그 수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대개 가난한 신자들의 손때 묻은 한 푼, 두 푼을 모아 근근이 꾸려나간다.
토마스의 집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식당 주인들이다. 이분들은 토마스의 집에서 공짜 밥을 주지 않으면 노숙자들이 밥을 사 먹을 것이요, 빈둥빈둥 놀지 않고 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무료급식을 하여서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무위도식하게 한단다.
옳은 생각이다. 배고프고 돈 없으면 일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업주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겉으로는 사지가 성한 이들이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보통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든가 가정불화로 집을 나온 이들은 대개 트라우마가 있다. 또 겉으로 보기와 달리 상당수가 장애인이다. 그리고 막노동도 따스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야 할 수 있다. 영등포역에서 신문지 한 장 덮고 깔고 잔 이들에게 애초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한 끼 밥을 제공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못한다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오늘도 뽀드득뽀드득 가난한 식판을 씻는다. 보잘것없지만 정성이 깃든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을 드리기 위해서.
김여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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