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강원도 강릉시 임곡리에 있는 임곡굴로 떠난다. 임곡굴은 생성물이 아름답고 다양하기로 손꼽히는 동굴이다. 새하얗고 커다란 석순(바닥에서 자라는 동굴 생성물)과 종유석(고드름처럼 위쪽에 매달린 생성물), 석주(석순과 종유석이 맞닿아 생긴 기둥 모양 생성물), 석화(석회 혹은 석영 등의 성분이 꽃 형태의 결정으로 생성된 것) 등이 동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동굴 입구 부근을 확보 하지 않고 가기에는 불안하게 느껴지는 트레버스(절벽을 가로로 건너가는) 한 구간을 제외하면 별다른 수직 등강, 하강 장비가 필요 없는 수평굴이다. 하지만 목까지 잠기는 물속 구간이나 위험한 절벽 구간도 있다. 또 4m 가까운 수직 침니(굴뚝 안처럼 생긴 지형) 구간 등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중간쯤에는 비스듬히 흘러내린 유석이 길을 가로막아 덩치 큰 사람은 중간까지만 출입이 가능한 만만찮은 동굴이다. 임곡굴 또한 석회동굴이다.
석회동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동굴이다. 석회동굴의 형성 과정은 땅 표면에서 스며든 지하수가 땅속의 석회암층을 용해시키면서 땅속에 스며들어 지하수를 이루게 되며, 이 지하수가 흘러 지나간 자리의 공동(空洞)이 바로 석회동굴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석회동굴은 그 생성연대가 4만~8만 년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흘러간 자리에 석회성분이 다시 떨어지는 낙수를 통해 침전되어 생긴 생성물이 석순, 종유석, 동굴 베이컨시트 등이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종유석의 경우 길이 1㎝ 정도 자라려면 약 15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우 몇㎝밖에 안 되는 생성물도 몇십 년, 몇백 년의 세월 동안 자라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동굴 탐험을 할 때에는 이런 생성물들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임곡굴은 동굴 입구가 도로에서 매우 가깝다. 그렇기에 별다른 산행을 하지 않고 동굴 입구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동굴에 들어가서 낮고 평평한 길을 따라 5분쯤 기어들어가면 좁은 입구를 들어갈 땐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넓은 광장이 나온다. 천장 높이와 전체 면적이 어지간한 대형마트 건물 크기와 맞먹는 넓은 광장이다. 입구는 사람이 겨우 기어서 들어가는 크기인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광장에는 바닥으로는 깊은 연못이 있고, 천장도 까마득히 높다. 이 광장의 입구 쪽에서 들어오면 9시 방향인데, 3시 방향으로 형성된 길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6시 방향 쪽으로 빙 돌아서 연못 위 절벽을 타고 트레버스를 해야 하는데, 이 구간이 임곡굴 최고 난도 구간이다. 한 명이 선등(제일 먼저 오르거나 건너면서 로프를 설치하는 역할)으로 로프를 몸에 묶고 오른쪽 옆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뎌야 한다. 아래쪽으로는 10m 이상 낭떠러지다. 거의 다 가서 떨어질 경우에는 진자운동으로 왼쪽으로 끌려오면서 바닥의 연못을 향해 10m 이상 추락해 물에 빠지게 되어 있다.
선등은 그만큼 부담이 많고 위험하다. 필자가 몇 번 건너간 경험이 있는 터라 무사히 먼저 건너서, 로프를 반대쪽에 설치하였다. 로프를 확보시킬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큰 바위에 우선 확보를 하고, 그 옆 석순 부근에 보조 확보를 하였다. 혹시나 첫 번째 확보물이 탈락하더라도 두 번째 석순이 로프를 견뎌 줄 것이다. 그렇게 대원들이 하나둘 로프를 잡고 무사히 절벽을 건너왔다. 건너는 길이가 8m 정도밖에 안 되지만,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모두가 건너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동굴 안을 살펴보았다. 랜턴 빛으로 겨우 식별할 정도의 높은 천장과 바닥의 개울물과 연못, 비탈진 경사면 위에는 투명하고 하얀 석순들이 얼음기둥처럼 서 있었다. 높이가 성인 남자 키 정도 되고, 굵기 또한 어른 허벅지만 한 석순 10개 정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동굴 진주(진주 모양으로 생긴 동굴 생성물)와 벽에 붙어 있는 석화도 인상적이었지만, 다랑논처럼 생긴 바닥이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들이 암흑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랜턴을 비추자 몇천, 몇만 년간의 세월 동안 못 보던 빛을 이제야 보는 것이다.
조심스레 생성물을 관찰하면서, 최대한 생성물이 없는 진흙 위로만 다니도록 노력했다. 천연동굴 탐사는 정해진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마구 밟고, 생성물들을 만지면, 몇천, 몇만 년 동안 순수하게 생성된 결정들이 흙 발자국, 흙 묻은 손길 한 번에 오염되는 것은 한순간일 것이다. 최대한 앞사람이 갔던 길, 보존가치가 있는 생성물이 없는 곳을 따라 탐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넓은 광장의 트레버스 구간을 지나서 연못으로 연결되는 개울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임곡굴에 들어가는 사람은 임곡굴의 주굴(동굴에서 가장 깊고, 길게 연결된 길)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울을 따라가다가 생뚱맞게 천장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어 앞만 보고 개울을 거슬러간다면 주굴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길을 찾지 못한다면, 개울을 따라 50m 정도 더 나아가는 것으로 동굴이 끝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천장으로 연결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침니를 타고 위로 나아가면 본격적인 임곡굴 탐사가 시작된다. 이 지점까지가 전체 구간의 4분의 1 정도 된다. 침니를 타고 올라가면 거기서부터는 잠깐 동굴물을 만날 수 없다. 조금 전 올라오기 전 개울물의 상류 쪽으로 가기 위해 위쪽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금 있는 곳으로 물이 흘렀지만, 지금 있는 위쪽을 침식시킨 후 동굴물이 밑의 더 약한 지반을 찾아 아래쪽으로 흐른 것이다. 그 덕분에 물길을 우회해 사람이 탐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20분가량을 이동하여 다시 상류의 개울을 만날 수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입굴할 때보다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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