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격증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최근 꽃꽂이에 재미를 붙인 내게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격증 한 번 따봐." 원예 관련 자격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친구 입에서 자동으로 나온 말이었다. 올해 초 우쿨렐레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한 친구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배워 전문가가 되자고 '우쿨렐레 지도사 자격증'을 함께 딸 것을 권했고, 나는 거절했다. 즐기자고 시작한 일인데 별도의 시간과 돈을 들여 자격증 스트레스에 나 자신을 내몰기 싫었다.
자격증 따기 현상은 정규 교육과정을 마쳐도 끝나지 않는다. 주요 대학마다 있는 '평생 교육원'은 그 이름에서 배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무슨 자격증 준비반 종류가 이렇게 많은 것인지, 독서지도사, 방과 후 아동지도사, 음악심리지도사 등 다양한 자격증 과정이 개설돼 있고, 그곳에는 갖가지 목적으로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커피숍마다 걸린 '바리스타자격증'은 이제 흔해졌고, 요즘에는 대학생들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이색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한 취업준비생은 '조주기능사 자격증'(칵테일 제조 자격증)으로 면접관에게 "회식용 폭탄주를 맛깔 나게 만들 수 있다"며 호소하기도 한다.
재미가 목적인 취미가 자격증과 시험으로 연결될 때 스트레스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몸소 겪었다. 몇 년 전 스페인어시험 '델레'를 본 적이 있었다. 스페인어를 배운 사람들이 '자기만족형' 등급이라고 하는 왕초급, 난이도 최하 등급에 응시했다. 약 15만원의 비싼 응시료 때문에 꼭 붙어야 한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주말엔 대학 도서관에서 모의고사를 풀었고, 부서 1박 2일 워크숍도 시험날과 겹쳐서 가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다. 가까스로 시험에 합격한 뒤 페이스북에 인증샷을 찍어 자랑했고, 그 기쁨과 성취감은 하루도 채 가지 않았다. 어렵게 딴 자격증은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 스스로 되물었다. 도대체 이 시험, 왜 본 거냐고.
자격증에 집착하는 우리 모습은 불안과 맞닿아 있다. 좁혀 말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취업 원서에 하나 더 추가된 자격증이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취업한 뒤 직장인이 돼서 딴 자격증은 만약 이 회사를 떠난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밥벌이할 보험이 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항상 불안했다. 고등학생 때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까 봐 불안했고, 그 대학에 들어간 뒤 취업 때문에, 취업을 한 뒤 결혼 때문에, 결혼한 뒤 출산과 육아 때문에 불안했다. 불안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불안을 낳았고, 그 불안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미래에 조금 덜 불안해지려고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의미 없는 자격증은 따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는 자격증 공부보다 재밌는 일이 더 많고, 인생은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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