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인요한 연세의료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북 결핵환자 100만 추산…통일 되기전 뿌리 뽑아야"

김병준이 만난사람-인요한
김병준이 만난사람-인요한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던 다음 해인 1895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파송된다. 이후 광주와 목포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연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튼은 한발 더 나아간다. 선교 교육 의료 사업을 넘어 항일운동에도 적극 뛰어든다. 3'1만세운동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고, 국제사회에 조선독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었고, 해방 후 다시 들어와서는 본인이 운영하던 학교 내에 있는 신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화장실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의 한남대학교인 대전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 린튼의 아들 휴 린튼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부인 베티 린튼과 함께 평생을 전라도 농촌과 도서지역에서 살며 수백 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특히 결핵이 심했던 당시, 결핵퇴치 운동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이들 부부의 막내아들이 바로 인요한(John Linton) 연세대 의대 교수이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북한에 대한 의료지원 등 다시 선대가 걸어온 길을 가고 있는 그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가 사랑하는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또 다른 한국, 즉 북한 이야기 등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순천 촌놈'의 온돌문화와 태극기

김병준: 어떻게 전라도 사람이 되셨나?

인요한: 북장로교, 즉 미국 남북전쟁 때 이긴 북쪽 선교사들은 서울 대구 평양 등에 배치되었다. 알렌, 언드우드 등이 그랬다. 반면 남장로교, 즉 남쪽 선교사들은 전주 나주 대전 등에 배치되었다. 외 증조부가 바로 남장로교 선교사였고, 그래서 나주 쪽으로 배치되셨다. 하지만 향교가 강해 선교를 못하고 쫓겨나 목포와 광주에서 활동하셨다. 그게 시작이다.

김병준: 전라도 중에서도 순천, 그래서 스스로 '순천 촌놈'이라 하는데?

인요한: 할아버지는 전주, 아버지는 순천에서 주로 활동하셨다. 그래서 나도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랐다. 그래서 '순천 촌놈'이다. '촌놈'은 웃자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촌에서 자라면서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지혜로워지고, 또 공동체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된 게 뿌듯해서 그런다.

김병준: '촌'에서 자란다고 그렇게 되나?

인요한: 온돌문화를 생각해 보자. 같이 모여 있으니 소통이 되고 통합이 된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어주고, 아이들은 이를 통해 지혜를 배운다. 요즘 소통이 잘 안 되고 도덕이 무너지는 것이 모두 중앙난방 때문인 것 같다.

김병준: 같이 모여 있으면 싸우기도 하지.

인요한: 그렇다. 여섯 남매의 막내였는데 밤낮 형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어떻게 하면 맞지 않을까, 늘 지혜를 짜내야 했다. 강해지면서도 똑똑해지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런지에 대한 도덕관념도 생겼다. 예컨대 남이 나쁜 짓 한다고 해서 나도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면죄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등이다.

김병준: 전라도 사람이니 경상도 사람이나 대구 사람 욕 많이 했겠다.

인요한: (웃음) 1971년 선거 때 원래 김대중 후보가 이겼는데, 박정희 후보가 개표 부정으로 대통령 자리를 빼앗아 갔다. 이런 것 (웃음) 맞다. 경상도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조금 덜 나쁜 사람들이었다. (웃음) 지역감정, 정말 쓸데없다.

김병준: 앞으로는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걱정이다.

인요한: 양쪽을 이간시키며 쉽게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내 고향인 순천에서 여당 국회의원이 당선된 것을 보면 조금 희망이 생긴다.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대구에 좋은 야당 후보가 나오면 선거운동을 해주자고.

김병준: 어쨌든 전라도 분이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 특히 광주항쟁에 참여해 외신기자회견 통역까지 했고, 그 일로 나라 밖으로 쫓겨날 뻔했던 분 아니냐? 욕 많이 먹었겠다.

인요한: 우리 집안은 원래 야당 '꼴통'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신격화할 정도다. 그런데 지금의 제1야당이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던 그 당이냐? 아닌 것 같다. 많이 과격해지고 급진적인 당이 되었다.

김병준: 그런가?

인요한: 3년 전 귀화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그 제1야당이 국기와 애국가를 부정하는 정당과 연대를 했다. 아니, 광주항쟁에서도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불렀는데 이를 부정하는 세력과 손을 잡다니? 충격을 받았다. 그러던 중에 박근혜 후보 쪽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동서통합문제와 다문화가정 문제 그리고 남북문제 등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한국, 한국인의 경쟁력

김병준: 지난 역사를 보면 한국이 많이 발전했다. 그런데 최근 의문이 든다. 성공의 역사를 계속 써 나갈 수 있을까?

인요한: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 많이 울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며 만든 역사인가? 이런 역사를 또 만들어야 한다. 통일이 바로 그 길이 될 수 있다. 남북이 합쳐 1억 명 정도의 인구가 되면 국가의 위상이 달라진다. 일자리도 생긴다. 물론 일시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은 충분히 넘을 수 있다.

김병준: 지금 당장을 걱정해야 하고, 아주 가까운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인요한: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말고 밖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미국 가서 사는 사람들 봐라. 1년이면 차를 사고 5년이면 80%가 집을 산다. 상품만 팔 게 아니라 이런 경험과 능력을 다른 나라에 팔아야 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심으로 조금 하고 있는데, 훨씬 더 과감하게 해 나가야 한다.

김병준: 국제사회가 어떻게 반응할까?

인: 한국과 한국인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많다. 일례로 페루에 가면 서부는 사막이고 동부는 홍수지역이다. 답답하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가운데 있는 산맥을 뚫어서라도 나라를 바꾸어 놓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페루 사람들에게 말한다. 당신들 가진 자원 좀 내놓고 한국 사람들 불러들이라고.

김병준: 한미 FTA를 추진할 때 잘못하면 제2, 제3의 이완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 시장을 연다?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믿는 게 있었다. 바로 한국인의 저력이었다. 뭐든 넘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인요한: 나도 순천서 자란 한국 사람이다. 실패했다고 주저앉지 않는다. 연세대 의대 다니던 시절 한자를 못 읽어 낙제한 적이 있다. 그러면 어떠냐. 이후 한자 공부 죽어라 해서 졸업도 하고 국가고시도 통과했다. 오히려 낙제 동기들이 생겨 더 좋다. 입학 동기, 졸업 동기, 낙제 동기, 대단하지 않나? 미국서도 그랬다. 일정상 준비 없이 수련의 시험 쳤다가 떨어지고, 그래서 할렘에서 바닥 생활도 했다. 그러나 다시 도전해서 붙고, 후일 수련의 평가에서는 1등을 하기도 했다. 자랑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김병준: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계신 데 의료 부문의 경쟁력은 어떤가?

인요한: 연세의료원만 해도 1년에 외국인 6만 명이 다녀간다. 입원 환자 절반이 아부다비, 러시아 등에서 온다. 앞으로 더 확대되어야 한다. 좋은 장비도 도입하고, 세계적인 스타 의사도 나와야 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한국에 와서 치료받고 돈 쓰고 가도록 해야 한다.

김병준: 그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는 말인가?

인요한: 그렇다. 로봇 수술 같은 것은 우리가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예컨대 로봇 전립선 수술의 경우 연세의료원만 해도 수술이 2만 건에 육박하고 있다. 사우디 일본 심지어 미국에서도 배우러 온다.

김병준: 영리병원을 하면 더 잘될 것 같은데, 이게 어렵다. 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진다고 야단이다. 스웨덴이나 독일도 영리병원을 하는데 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졌나 되물은 적도 있다.

인요한: 영리병원을 해야 한다. 최소한 인천 같은 지역에 일단 시험적으로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된다.

김병준: 어쨌든 이런저런 일로 우리가 가진 뛰어난 능력조차 다 써먹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의료부문에서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인요한: 태국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외국 환자들을 받고 있다. 우리가 그들보다 의료기술이 떨어지나? 아니다. 이렇게 둬서는 안 된다. 의료는 인술이다. 틀림없다. 그러나 산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닌 기술 위에 질 높은 서비스를 더해 외국인 환자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 또 홍보도 잘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돌아가지 않아 답답하다. 개인적으로는 의료관광 케이블 방송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결핵

김병준: 오랫동안 북한 진료를 해 왔는데, 북한 사람들의 건강이 어떻다고 보나?

인요한: 1997년부터 해왔다. 결핵이 큰 문제다. 말라리아는 24시간 약 먹으면 없어진다. 세균성 장염도 많지만 깨끗한 물만 공급하면 된다. 그러나 결핵은 다르다.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김병준: 어느 정도 심각한가?

인요한: 우리도 1959년 사라호 태풍 이후 결핵이 심했다. 환자가 인구의 5% 정도로 100만 명이 넘었다. 위의 두 형도 결핵에 걸렸었고, 이것을 계기로 어머니가 순천 기독결핵재활원을 운영하게 된다. 북한도 통계가 없지만 이때의 우리 정도 되지 않을까?

김병준: 치료가 어렵나?

인요한: 결핵은 잘 먹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니 문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다제내성 환자이다. 결핵은 6개월 정도 1차 약을 준 뒤, 이것이 듣지 않으면 끊든가, 이보다 강한 2차 약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2차 약값이 1차 약값의 100배는 된다. 북한 입장에서는 도저히 줄 수가 없다. 그러니 끊어야 하는 1차 약만 끊지 못하고 계속 준다. 그 결과 내성을 키워 다제내성 환자라는 괴물이 만들어지게 된다.

김병준: 그게 어느 정도로 위험하나?

인요한: 다제내성 환자는 균을 뱉어내며 1차 약이 듣지 않는 환자를 1년에 10~15명씩 만들어 낸다. 그대로 두면 치사율이 40%가 된다. 세균이 모든 약을 다 분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에이즈보다 무섭고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보다 무섭다. 통일 후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것이다.

김병준: 몰랐던 이야기이다. 전기 공급하고 도로 놓아 주는 비용만 생각해 왔다.

인요한: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3월 문정림 의원 등과 코리아결핵퇴치연맹(KATA)을 만들었다. 부끄럽지만 대한민국도 OECD 국가 중에 결핵환자 발생 비율이 제일 높다. 남과 북 모두에서 결핵을 없애자는 취지이다.

김병준: 대한민국이야 어찌어찌 잡아 나간다고 하지만 북한은 어쩌겠나? 2차 약도 주지 못할 형편인데.

인요한: 어찌 되었건 서로 노력하여 통일 전에 잡아야 한다. 통일 후의 자유주의 아래에서는 환자를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북한처럼 통제된 사회가 이런 면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다. 강제수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제내성 환자가 여기저기 퍼지면 큰 일 난다.

김병준: 끝으로 한 가지 묻자.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시는데, 그래도 이것 하나는 고쳤으면 하는 것이 있지 않겠나? 하나만 이야기해 달라.

인요한: 북한 문제에서 정부보다는 기업 등 민간 부문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한다. 어떻게 보면 북한사람들도 이런저런 사람들 다 경험해야 한다. 건전한 기업인, 사기꾼, 시민단체, 엉터리 종교인, 심지어 친북 좌파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다양성이 우리의 힘 아니냐? 그 힘을 이북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김병준: 재미있는 견해이다. 가고 싶은 사람 다 갈 수 있게 하자는 뜻 아니냐?

인요한: 한 가지 더 있다. 대북관계에 어떤 원칙을 세우든 인도적인 지원은 끊지 말고 계속해 주었으면 한다. 인간적으로 서로 도와야 한다. 그래야 통일 후 통합도 잘 된다.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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