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숫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 그 집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창가에는 예쁘게 핀 제라늄 화분이 놓였고, 지붕 위로 비둘기가 날아드는 멋진 장밋빛 벽돌집을 봤어요."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쉽게 떠올린다. "시세 100만프랑짜리 집을 봤어요." 그래야 비로소 어른들은 탄성을 지른다. "정말 멋지겠구나."
교사란 직업을 가지고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정말 많은, 다양한 학생들을 접하게 됩니다. 처음 교직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저 자신에게 가장 먼저 했던 다짐은 소설 '어린 왕자' 속의 한 구절처럼 어른들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학생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성적, 가정형편처럼 어른들이 수치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에 즐거워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야기하는 교사. 그래서 학생 개개인의 가치를 알아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교직에 몸담은 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샌가 어른들의 숫자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저를 보며 많이 놀라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학생들마저 너무나도 당연하게 어른들의 숫자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에 대한 탐색보다는 그 직업이 가져다주는 부의 크기가 얼마인지가 진로 탐색의 기준이 되어버렸고, 친구의 옷차림과 씀씀이가 인간성을 가르는 잣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얼마 전 저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예방접종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조리원에 있는 산모들끼리 이야기를 해보니 BCG 예방접종에는 두 종류가 있답니다. 그런데 보건소에서 하는 무료접종을 할 경우 흉터가 남아 나중에 어린이집에 가면 아이들이 공짜 주사를 맞았다고 놀릴 수도 있으니 병원에서 접종하는 경피용(약 6만~8만원) 접종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참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요? 순수한 아이들의 눈을 잃어버린 것이 물론 어린 그들의 잘못이겠습니까. 다 어른들의 수치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 우리들의 잘못이겠지요.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상점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어지게 되었단다."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고, 인간관계 자체를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에게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가 강력한 일침을 날립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돌려주는 일. 바로 그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배현진 도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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