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상황서 자긍심 지켜낸 유태인
메르스 공포 극복 성숙한 시민의식
배려·나눔·봉사가 최상의 백신 입증
긴박할수록 단결 이끌 공유 코드 필요
나치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실태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로 많이 폭로되었다. 기록물에 남겨진 참상은 영화보다 더 처참했다. 당시 나치 상부의 명령은 '특히 유태인은 이유 불문 총살해 버리라'는 것이었다. 포로수용소 독일 병사들에게도 특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나 나치에 광적인 병사가 아닌 이상 사람을 죽이는 것엔 두려움도 있었고 포로에 대해 인간적인 동정의 정서를 갖고 있는 병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자 상부에서 악랄한 명령을 내린다. 유태인들의 공동 화장실 개수를 대폭 줄이라고 한 것이다.
질서가 엉망이 되면서 다급한 포로들은 아무 곳에서나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오물이 쌓이기 시작했고 악취천지였다. 예민해진 병사들은 짜증을 참기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 포로들은 인간이 아니고 하등한 동물 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병사들은 아무 곳에서나 웅크리고 앉아 끙끙대는 동물(?)들에게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포로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이 깊은 포로들은 언행이 달랐다. 빈약한 배급 식사도 연명에 필요한 최소의 양 외에는 동료들에게 주었다. 대다수의 포로들은 희멀건 배급 커피를 허겁지겁 마셨지만, 생각이 있는 그들은 그 물로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머리도 단정히 매만졌다. 그들은 먹은 것이 별로 없으니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가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모아 공부하고 토론했다. 이 지옥의 삶은 머지않아 반드시 끝난다. 그러니 희망과 행복의 불꽃을 꺼트리지 말자고 했다. 유태민족의 자긍심을 얘기한 것이다.
그들의 삶은 영양실조 등으로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오래 살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수용소에서의 삶은 동료들에게 유태인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간이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국제기구에 유태인 포로들의 처참한 참상을 죽음으로 고발한 시위이기도 했다.
메르스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어지럽게 횡행한 지난 시간, 뿌리 깊지 못한 나무처럼 뽑혀져 여기저기 널브러지고 흔들거리는 혼란 중에도 의연한 시민정신을 보여준 분들 덕분에 그나마 위로도 있었다.
가장 좋은 백신은 배려와 나눔, 자원봉사 등 성숙한 시민의식이고, 메르스 의병대의 활약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반면, 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는 중 특히 서민들 삶의 타격은 메르스보다 더 무섭게 커졌고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경제손실에다 설상가상으로 큰 가뭄까지….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라에 긴급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행동을 일치단결시키는 공유 코드가 없다는 안타까움을 송호근 교수는 '나는 시민인가'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뼈아프게 묻고 있다. 수많은 사건사고로 많은 모순과 불합리한 문제가 드러났지만,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다짐만 난무했을 뿐 메인 컨트롤 시스템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된 원인은 정부의 무능, 무대책, 무책임 등 복합적이지만 우리 국민들 개개인도 국민으로서의 책무가 많다.
좀 다른 얘기지만 케네디 전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떠올리게 된다. 나라가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만을 요구하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국민이 되자는 연설 말이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참사 때 그 아수라장에서 생명을 건진 710명(1천514명은 사망, 실종)은 자신들이 구조된 것은 의연했던 승객들의 숭고한 배려와 실천적 행동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존 스미스 선장의 한마디 외침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Be British-영국인답게 행동합시다."
그의 고향엔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판엔 키워드 '영국인답게 행동하자'는 마지막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올곧은 시민의식을 갖춘 당당한 주체가 될 때 우리도 "Be Korean"이란 한마디 외침이 명령이나 강제가 아닌 자랑스러운 공유행동 맹세로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런 날은 언제일 것인가?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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