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간암 환자의 간절제수술이 잡혔다.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간의 중앙을 절제하는 수술이었다. B형 간염을 앓은 환자여서 간 경변증이 동반돼 있었고, 간 조직이 섬유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환자는 수술 후 회복하던 중 간세포가 빠르게 파괴되며 3일 만에 간 부전에 빠졌다. 다급해진 의료진은 간 이식 밖에 길이 없다고 판단하고 뇌사자 간 이식수술을 위해 장기이식 등록을 했다. 또 가족들을 찾아 생체 간이식도 고려하며 제공자를 물색했다.
간 제공 후보자로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자녀들은 서로 자기 간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검사 결과 아들은 당뇨환자여서 부적격이었고, 딸이 간 제공에 동의해 준비를 하던 중 가족 중 한 사람이 동의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틀 후 마침내 뇌사자가 울산에서 발생해 환자에게 배당이 됐다. 첫 수술 후 13일 만에 뇌사자 간이식을 시행해 완전히 회복한후 3주만에 퇴원했다. 환자는 한달 이상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해 팔다리가 앙상하고, 부축하지 않고서는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환자는 퇴원 후 1주일 만에 외래진료실을 방문했다. 여전히 휠체어에 의지해 진료실에 들어왔지만 또다시 감사의 마음으로 서로 손을 꽉 잡고 악수를 나눴다. 팔을 잡아보니 앙상한 팔은 그대로였다.
"쇠고기도 좀 드시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드시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다. "우린 채소반찬으로 살아왔기에 소고기 잘 먹어보지 못했고 먹을 줄도 몰라요, 또 소고기 살 돈도 없어요." 옆에 있던 부인의 대답이었다. 알고보니 덕유산 자락 두메산골에 사는 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체구도 왜소하고 마르긴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간절제 수술부터 간 이식까지 한 달 반 가량 마음 졸이며 치료에 임했던 장면들이 떠오르며 울컥 가슴이 멨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음을 잊어왔다.
잠시 자리를 피해 신사임당 그림 두 장을 봉투에 넣어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첫번째 이유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살아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두번째는 어려운 고비 때 마다 가족들이 항의 한번 하지 않은 순박한 마음에 대한 감사였다. 세번째는 정말 맛있는 쇠고기국을 드시고 힘을 얻으라는 위로의 표시였다.
2주만인 환자가 다시 외래진료실을 찾았다. 체중이 2kg 늘었다고 했다. 여전히 걸음이 불안하긴 했지만 얼굴이 말끔해졌고 생기가 돌았다.
외과는 '3D 과'란 얘기를 자주 한다. 올해 전공의 선발에서도 외과에는 한사람도 지원하지 않아 전공의를 뽑지 못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외과가 '역동적이고(Dynamic) 드라마와 같으며(Dramatic) 꿈을 심어주는(Dreaming)'라는 의미의 '3D과'라는 사실을 모른다.
강구정 계명대 동산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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