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거와 연정(聯政)

한국 사회는 동거(同居)에 대한 편견이 강한 편이다. 이 편견은 가족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지만 절차와 격식, 이목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 더 크다. 혼전 동거가 흔해지면서 요즘에는 큰 허물이 되지 않지만 동거 사실을 가급적 숨기는 것도 현실이다.

정치판에도 동거 체제가 벌어진다. 대통령제하에서 연립정부'대연정과 같은 정치 용어는 생소하지만 과거 우리 정치에도 이따금 등장했다. 1997년 DJP연합이나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등이 그런 경우다. 흔히 연정을 야합이라고 깎아내리지만 성공과 실패를 떠나 연정은 하나의 좋은 정치 실험이다.

정당 간 동거 체제의 대표적인 사례는 1980, 90년대 프랑스의 '코아비타시옹'(좌우 동거 체제)이다. 1986년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공화국연합(RPR)의 시라크를 총리로 지명하면서다. 이 좌우 동거 정부는 1993년에 이어 1997년 시라크-조스팽 동거 체제로 이어졌다.

현재 각국마다 연립정부 체제는 흔하다. 일본 자민당과 공명당 간 우우 동거는 고정 레퍼토리다. 현재 프랑스는 사회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이고, 메르켈 총리의 독일도 사민당-기민당의 연립정부다. 영국 캐머런 내각도 보수당과 기민당이 공존하는 체제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원내 2당으로 전락하자 '연립정부론'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3당 체제로 진입한 국민의당에서 연정에 대한 목소리가 우세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민이 만들어준 틀 안에서 국정을 이끌어 가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정책이나 생각, 가치관이 다른데 막 섞이게 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도, 그런 틀도 없다. 민생 안정과 효율적인 국가 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능성이 낮지만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연대가 새누리당의 목을 죈다면 지지율이 바닥인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힘을 받기 어렵다. 미테랑은 국민 지지를 잃자 정파를 초월해 '통통'(모든 국민의 아저씨)으로 변신하면서 1988년 재선에 성공했다. 왜 미테랑이 '프랑스의 스핑크스'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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