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업자들이 고매하신 의원님들께 청원 드립니다. 저희는 저희에 비해 턱없이 월등한 조건으로 빛을 생산하는 외부 경쟁자 때문에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격과 고품질로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자는 바로 태양입니다. 이 같은 불공정을 시정하기 위해 낮에는 모든 창문과 지붕창, 채광창을 닫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주십시오. 이렇게 자연광을 차단하고 인공 빛의 수요를 창출해 내면 프랑스 국내에 번창하지 않을 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양초의 원료인 유지방은 소와 양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프랑스 전역의 낙농업은 번창할 것이고…(하략)"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끌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1844년에 쓴 '양초, 초, 샹들리에, 램프, 가로등, 심지가위, 촛불 끄는 도구 제조업자와 유지, 수지, 알코올 생산업자 및 모든 조명 관련업자의 청원'이다. 당시 보호무역 강화법안을 통과시킨 의회의 조치를 비꼰 것으로, 보통 '양초업자의 우화'로 불린다.
실제로 프랑스 조명업자들이 이런 청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똑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관료나 국회의원이 특정 이익집단에 '포획'돼 다수 국민의 이익을 희생해 특정 집단의 배를 불리는 '지대추구'적 규제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규제는 입법 활동이라는 합법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바스티아는 이런 입법 활동을 "법이나 정치의 도움으로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합법적 약탈"이라고 했다.
19대 국회 마지막 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안경과 콘택트렌즈의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사실상 금지하고 위반 시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의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슬그머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안경과 콘택트렌즈는 앞으로 해외 직구보다 훨씬 더 비싼 값으로 국내 안경점에서 구입해야 한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이 버젓이 국회를 통과했는지 짐작이 간다.
대한안경사협회는 이에 대해 "안경과 콘택트렌즈는 일반 공산품이 아닌 의료기기이므로 검증된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해야 한다"며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 반응은 "관련업계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가 싸게 살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라며 비판 일색이다. 참고로 이 법안의 발의자는 새누리당 이명수, 김기선, 김명연, 김을동, 신경림, 이노근, 이에리사, 정희수, 홍철호, 황인자 의원 등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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