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려 태조 왕건, 개국공신·투항자에 성(姓)내려주며 '성명' 표기 확산

역사 속 이름 짓기의 변천

'박에서 태어났다 하여 박(朴)을 성으로 삼고 세상을 널리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혁거세(赫居世)라고 이름 지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열전은 인물의 이름을 풀이하는 것으로 그 첫 시작을 열고 있다. 인류는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로 구별하기 위해 또는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 한문의 유입이나 한글의 보급 이후 표기법이 다양해지면서 우리나라 전통 이름의 형태에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역사 속 이름의 변천 과정을 정리해 보았다.

◆고대의 이름은 바위, 차돌이, 강아지=케빈 코스트너 주연 영화 '늑대와 춤을'(1990)에서 관객들을 웃음 짓게 했던 내용이 있다. '머리 속의 바람' '발로 차는 새' 같은 인디언들의 이름이다. 고대 문자 발견 이전 우리 조상의 이름도 아마 비슷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확실치는 않지만 바위, 차돌이, 강아지, 돼지, 굼벵이, 넓죽이처럼 신체 특성, 행동의 특징에 빗댄 토박이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중국에서 한문 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도 문자로 표현된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전국의 지명까지 한자식으로 통일했던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는 나당(羅唐) 유학생 교류가 확대되는 통일신라시대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당시 이름을 보면 김춘추, 김인문, 최치원, 최승우 등 오늘날의 인명과도 거의 흡사한 형태다.

일부 귀족, 특권층에 한정되던 성(姓)이 널리 일반에까지 확산된 것은 고려 건국에 이르러서이다. 태조 왕건이 개국 공신들이나 투항자들에게 성을 내려 주면서 본관(本貫)제도가 구체화되고 성명식 표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게 되었다.

◆조선 시대 노비이름, 강아지, 곱단이=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국시로 채택하면서 문물제도 전반을 중국식으로 세워가게 된다. 성씨는 물론 작명에 있어서도 유교식을 따르게 되면서 이름에도 성리학적 질서가 도입되었다. 아호, 관호, 시호(諡號) 같은 유교적 성격의 호칭들이 생겨나고 제도로 정착되었다. 천명장수(賤名長壽: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장수한다는 사상)에 근거한 천한 이름의 아호도 이런 문화의 소산이었다.

1446년도 훈민정음의 반포는 그 역사적 의의만큼 이런 제도에 있어서도 대전환기가 되었다. 우선 이름의 표현 방식에서 국한문 병용이나 한글 표현 방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양반 사회나 지배층 관료들은 대부분 한자 위주 이름 질서를 유지해갔으나 하층민이나 여성들은 한글에 의존했다.

당시 재미있는 이름 사례를 살펴보자. 17세기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실린 부녀자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무척 흥미롭다. 박시다녜, 김시긋섬, 심치슈, 윤시녜향, 박경녈, 김시향이 등의 이름이 보인다.

노비 이름은 대부분 고유어, 토착어로 지어졌다. 다만 문서(노비) 정리를 위해 표기는 한문으로 이뤄졌다. 姜兒只(강아지), 介也之(개야지), 揷沙里(삽사리), 古邑丹伊(곱단이), 入分伊(입분이) 등으로 개개인의 용모와 행동의 특징을 따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조이(Joy), 룩희(Lucky) 같은 국제화 이름도=우리나라 이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창씨개명'이라는 혹독한 시련기를 맞이하게 된다. 일시적이지만 우리는 수십 년간 본래의 성씨를 잃고 일본식 독음(讀音)을 강요받았다.

1946년 '조선성명복구령'이 내려지면서 일제에 의해 강요된 개명은 모두 무효화되었고 본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최근에는 글로벌화 추세에 힘입어 해외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국제화 이름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이(Joy), 룩희(Lucky), 요한(John), 필립(Philip), 수지(Suzy), 난시(Nancy) 등이 그 예다.

이름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천, 변화 과정을 겪어 왔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구강구조와 어울리지 않는 외국식 이름의 등장이나 아이돌 그룹의 정체불명 이름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우리나라 이름 문화의 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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