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 버티기 부담됐나 "여·야·청 좋은 후보 내면 난 없어져"

야권 '배신자' 공격에 부담, 조건부 사퇴로 출구전략 모색, 이번에 낙마하면 두번째 불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에 차려진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에 차려진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된다.

김 내정자가 7일 삼청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내놓은 발언을 보면 기존 입장과 미묘하게 다르다. 그는 지금까지 "자진사퇴는 없다"고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이날은 "여'야'청이 합의를 봐서 좋은 총리 후보를 내면 저의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라며 조건부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가 말한 조건부 사퇴는 여'야'청이 먼저 새로운 총리 후보자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퇴하면 차기 내각 구성을 놓고 여야의 충돌이 불 보듯 뻔하니 여야와 청와대가 새 총리 후보자에 대해 합의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김 내정자는 국정이 마비된 현 단계에서는 순순히 총리직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공을 정치권에 넘겨 자신의 거취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찾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 내정자는 현재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 형국이다.

일단 야당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자진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마냥 버티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난 5일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의 분노도 목도한 데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거치면서 야권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사들로부터 '배신자'라는 공격을 받는 것도 참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김 내정자가 '자진사퇴는 없다'고 버티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노무현 정신의 모독"이라며 "김 내정자는 국민으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정신'을 건드린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총리 내정자 신분을 내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총리 지명을 왜 수락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이번 낙마가 두 번째 '불명예'가 될 수도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 2006년 7월에는 교육부총리로 취임 이후 13일 만에 논문 표절의혹으로 물러난 전례가 있다. 김 내정자가 이번에도 쫓겨나듯 사퇴를 하게 된다면 총리'부총리 직에서 모두 조기에 낙마했다는 오점을 안게 되는 상황이다.

'조건부 사퇴' 카드는 총리직 수락의 명분은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키기 위한 퇴로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이 붕괴되는 상황을 보고 그대로 있기 힘들었다"면서 총리직 수락 배경을 밝혔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본인이 뜻하는 바대로 국정 정상화를 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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