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K2 쫓아내지 말자

대구 동구 지저동에 사는 선배 언론인이 있다. 불로동, 지저동 등 항공기 소음 피해 지역에서 30년 정도 생활한 선배다. 그런데 이분은 소음 피해 배상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아니, 신청을 한 적도, 아예 받을 생각도 없단다. 1억원을 준다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K2 공군기지의 전투기 소음은 피해를 논할 수 있는 소음이 아니라는 게 그 선배의 대답이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활동 중 발생한 소음도 아니고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을 두고 소음이니, 피해니 하면서 배상을 받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외곽이었던 공군기지 인근에 주거지가 형성된 것이지 K2가 어느 날 갑자기 주거지역 한중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데, 시끄럽다고 할 수는 있지만 K2를 미워해선 안 된다는 게 그 선배의 논리였다.

그 선배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그는 'K2 소음' 하면 파일럿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제아무리 최첨단 무기, 전투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파일럿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란다. 전투기가 이륙하자마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격추된다면 이 나라 안보는 물론 예산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 전투기가 제 노릇을 하려면 이를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파일럿이 필요할 테고, 그러기 위해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하는데 소음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다면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신예 전투기는 무용지물이 되고, 엄청난 시간과 재원을 들여 양성한 파일럿도 훈련 부족으로 그 전투기를 제대로 몰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안보는, 그동안 국민 세금으로 들어간 비용은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했다.

K2는 조만간 대구경북 모처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대구공항과 함께 통합 이전하기로 정책적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방부가 대구경북 11개 시군의 20곳을 두고 예비후보지 결정을 위해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당 기초자치단체는 대구시 달성군과 경북의 경주'김천'영천'상주시 등 4개 시, 고령'군위'성주'의성'청도'칠곡군 등 6개 군이다. 조만간 예비후보지가 결정되면 후보지 선정을 거쳐 최종 이전 부지를 확정하게 된다. 내년 상반기 이전 부지가 결정되고, 이전할 기지가 마련되면 K2와는 영영 이별이다. 소음 피해 측면에서 봤을 때 그동안 동구, 나아가 북구'수성구 주민들을 괴롭혔던 K2라는 앓던 이가 완전히 뽑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견디기 힘든 굉음 피해를 감내하고 참아온 주민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쓰럽다.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죽했으면 동대구복합환승센터 및 신세계백화점 건설 공사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 와 동대구역 인근에서 생활했던 관계자들이 '도대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나, 신기하고 존경스럽다'는 말까지 했을까. K2 인근 주민들이 그동안 수십 년간 겪었을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소음 피해 배상을 받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배상 금액도 많지 않아 그들이 겪은 그동안의 고통을 다 배상해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이제라도 전투기 소음에서 벗어나게 돼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K2는 애물단지나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군사 요충지다. 우리나라 공군의 최첨단 전략 무기인 F15K가 있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제 K2는 떠나지만 다른, 이보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지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K2는 우리와 수십 년간 동고동락했던 이웃이다. 마치 괴롭히고 못살게만 했던 악당, 괴물 취급하며 쫓아내듯 보내선 안 된다. 소음으로 고통을 안긴 것은 사실이지만 보낼 땐 오랜 친구와 이별하듯 잘 보내야 한다. 부디 우리 기억 속 죽마고우로, 우리를 지켜줬던 오랜 벗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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