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최순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까?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100만 촛불 시위'로 국민 통합을 이뤄냈으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이달 들어 헌정 사상 최저치인 5%를 기록했다.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 탄핵 얘기가 나오는 판이니 말 다했다. 핵심 지지층이 밀집한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정말 신문을 덮고 방송을 끄고 싶은 마음이다. 매일 쏟아지는 최순실 보도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고, 가수 이승환의 말대로 매일 정신 고문을 당하는 심정이다. 하다 하다 '길라임'이라니, 이건 또 뭐지? 헛웃음이 난다. 욕하면서 본다는 한 편의 막장드라마 같다.
각설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불똥이 대구경북으로 튀고 있다. 지금 국회에선 내년도 예산결산 심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데 대구경북의 신성장 사업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싸잡혀 예산 칼질을 당할 판이다. 특히 삼성이 파트너로 있는 대구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창조센터) 사업에 전에 없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정부가 나서 전국 17개 시'도와 대기업을 매칭해 세운 창조센터는 박 대통령의 최대 역점 사업이다. 일부에선 창조경제가 앞선 정부의 '녹색 성장'처럼 폐기되거나 유명무실해질 거라는 냉소적인 예상이 있었지만, 그 위기가 이런 식으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 이는 없을 것이다.
대구경북 창조센터가 내년 예산 확보에 실패하면 운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구시는 대구 창조센터에 국비 45억원과 시비 25억원 등 총 70억원을, 경북도는 경북 창조센터에 국비 16억6천만원과 도비 11억1천만원 등 27억7천만원을 신청했다. 이들 중 국비는 '보류 상태'(예결위 위원 간 의견 대립으로 다른 사안 검토 후 재협의)로 분류돼 있다.
특히 다음 달 말 완공과 내년 본격 가동을 앞둔 대구 창조센터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대구 창조센터는 이번 창조센터 관련 국비 신청에서 서울'경기 창조센터와 함께 3대 '거점센터'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2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거점센터로서의 대구 창조센터 미션은 '미래기술창업'이다.
하지만 국비 확보에 실패하면 시비만으로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의 여파로 대기업이 발을 뺄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북의 파트너로 참여한 삼성은 그동안 400억여원을 출자했다고 한다.
창조경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기술 융복합과 혁신을 통해 경제 혁신을 일구자는 취지다. 2014년 9월 옛 제일모직 자리에서 대구 창조센터가 확대 출범식을 할 때의 부푼 기대는 아직도 생생하다. '삼성 크리에이티브 캠퍼스'를 기치로 내 건 대구 창조센터는 창조경제존, 문화벤처융합존, 주민생활편익존, 삼성존 등을 조성하고 있다.
전국 타 도시의 창조센터가 여전히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대조된다. 우수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 초기 기업과 예비 창업자를 보육하는 C랩은 이미 1~3기를 배출했다. 이런 가운데 최순실 게이트 불똥이 창조센터로 옮겨갈까 대단히 걱정스럽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창조센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흔들림없는 육성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대구형 창업생태계 구축'이라는 큰 구상은 이 정부의 명운과 관계없다는 것이다.
요즘 경제계의 큰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다. 데이터산업 같은 ICT를 주축으로 한다는 점에서 ICT를 중심으로 한 대'중소기업 간, 산업 간 융복합을 강조하는 창조경제는 궤를 같이하는 면이 크다. 한계를 지적받고 있는 그간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한국 경제 패러다임이 전환하려면 창조경제 같은 정책 구심점이 꼭 필요하다. 창조경제 취지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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