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대통령의 민낯

키 크고 잘생겼던 워렌 G. 하딩 상원의원은 권력욕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대통령 후보가 됐다. '후광이 비치는 빛나는 외모'로 사람들을 압도한 그의 이미지는 지도자로서 제격이었다. 공화당 여러 정파에서 대선후보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해지자 타협책으로 하딩을 내세웠고 그는 매력적인 외모와 높은 인기에 힘입어 너끈히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지적 수준이 낮아 철자법이 엉망이었고 능력과 의지가 부족해 대통령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만한 인물이자 간판으로 선택됐을 뿐인 하딩은 임기 중 숨질 때까지 미국의 29대 대통령(1921~1923)으로 재직했는데 그 자신과 미국의 역사에 재앙이 되고 말았다.

하딩은 금주법을 시행하면서 자신은 백악관에서 술잔치와 포커판을 벌였고 아내를 무서워하면서도 성 추문을 일으켰다. 고향인 오하이오의 친구들을 주요 요직에 임명해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방관한 것이 결정타였다. 내무장관 앨버트 폴과 법무장관 해리 도허티 등 '오하이오 갱'은 국가 소유의 유정을 거액의 뇌물을 받고 사업가들에게 넘겨줬다. 이권을 넘겨주는 데 반대한 해군 장관을 자기네 사람으로 갈아치우기도 했다. 하딩은 지도력, 위기관리 능력, 인사, 도덕성 등 여러 면에서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아한 이미지의 지도자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소통 부족과 인사 난맥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 등에서 보듯이 위기관리 능력도 낙제 수준이었다. 경제 민주화 등 핵심 공약을 철회하고 언론 통제와 교과서 국정화 등으로 민주주의 수준도 후퇴시켰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사상 최악의 추문이 되었고 대통령 자신도 '피의자'가 돼 국민에게 깊은 실망감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내실 없이 이미지 관리에만 치중하다가 몰락한 대통령의 존재는 왜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 앉으려 했는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하딩은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아야 했다"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기라도 했다. 한때 '정직과 신뢰의 지도자'였던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검찰 수사가 공정하지 않아 수사를 거부한다며 공권력을 무시하고 있다. 최순실 씨에게 임기 초반까지만 연설문을 넘겨줬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그저 청와대에 틀어박혀 악착같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치졸한 작태이다. 막무가내로 버티는 유아적인 대응 자세에서 파렴치하고 비열한 민낯을 본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나았을 최악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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