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오래된 가게

일본 야마나시현 니시야마 온천에 가면 기네스북에 등재된 숙박 시설이 있다. '게이운칸'(慶雲館)이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료칸(旅館)이다. 그런데 게이운칸의 역사가 경이적이다. 서기 705년에 지어졌으니 역사가 1천312년이나 된다. 가업도 52대째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게이운칸처럼 대대로 가업을 이어온 곳을 일본인들은 '시니세'라고 부른다. 시니세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아주 대단하다. 시니세는 한자어로 '노포'(老鋪)에 해당되는데, 일본에는 200년을 넘긴 노포만 3천여 곳이나 된다.

유럽에도 오래된 상점들이 많다. 오스트리아의 '세인트 피터 스티프츠켈러' 레스토랑은 1천214년 전통을 자랑하고, 아일랜드 애슬론의 '센스 바'는 1천117년 동안 영업을 이어와 유럽 최장수 술집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천 년이나 가업을 이을 수 있는 일본과 유럽의 풍토는 우리나라에서 상상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자식들 판검사'의사 하라는 부모는 있어도 장사 권하는 부모는 없다. 자영업에 뛰어들어 성공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자영업은 경쟁의 지옥이다. 매년 100만 명이 창업하고 80만 명이 폐업한다.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은 창업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오죽하면 '자영업이 월급쟁이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최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 노포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사업을 잇따라 시작하고 있어 이목을 끈다. 지난 2월 '2017 노포 등 관광콘텐츠 제작 계획'을 발표한 서울시가 앞장을 섰다. 서울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오래된 가게 50곳을 선정해 대중적인 관광콘텐츠의 소재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벤치마킹해 경상북도도 지역 노포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스토리텔링 북 제작'보급 사업에 나섰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점포는 김천역 앞에 있는 일식집 '대성암 본가'다. 192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문을 연 이후 지금 주인의 조부가 1942년 인수한 이래 3대째 가업이 내려져 왔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노포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현실의 방증이다. 봉건시대의 잔재인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마당에 1천 년은커녕 100년을 가는 노포조차 생겨날 여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지자체들이 뒤늦게 노포의 가치를 깨닫고 지원 사업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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