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경찰관은 아픕니다

"한 집안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곁에서 지켜 줄 수 없는 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라옵건대 고인의 국가를 위한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간청 드립니다."

포항 남부경찰서 장기파출소 근무 중 숨을 거둔 고현보(당시 55세) 경감의 유족들은 지난해 12월 보훈처에 낸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서 말미에 애타는 호소의 글을 실었다. 고 경감은 지난해 9월 음주 폭력 용의자 체포 과정서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인근 보건진료소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고 경감은 지난해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순직 승인을 받은 후 현재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한 상태이다. 비슷한 시기 포항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상록(당시 57세) 경감도 순직 처리가 된 후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준비 중이며 최준영(당시 30세) 경장은 국민청원, 재심 등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최종적으로 순직 처리가 되었다.

경찰관이 공무 중 순직할 경우 순직 경찰관의 유족에게는 공무원연금법에 의거 유족 연금과 유족 보상금이 지급된다.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면 보훈처에서 지급하는 보훈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국가유공자 지정도 예산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에도 불구하고 순직 경찰관들의 유족들은 대부분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한국의 치안 수준은 세계 1위로 집계될 만큼 한국 경찰은 대중의 인식보다 더 유능하고 성실하다. 하지만 경관들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파출소나 교통안전 업무 등을 하는 경찰은 보통 4조 2교대로 일한다. 첫째 날은 주간 근무, 둘째 날 야간, 셋째 넷째 날은 비번 순서로 근무가 돌아간다. 빡빡한 근무 일정과 야간 근무 때 쌓이는 피로는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40세 이상 야간 근무 경찰관 1만9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특수건강진단에서 전체의 50%를 넘는 1만1천여 명이 질병을 앓거나, 질병이 의심되는 판정을 받았다. 경관들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힘들다. 참혹한 사건사고를 자주 목격하고 사건 전 과정에 장기간 관여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등 정신적 손상 위험도 높다. 보건복지부도 경찰을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지정하고 있을 만큼 경찰의 직무 자체가 트라우마와 분리될 수 없다.

지난해 포항에서 있었던 순직 경관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늘도 경관들은 추운 겨울날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음주 단속을 하고 여름에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매연을 마시며 몇 시간씩 서 있기 일쑤이다. 저녁마다 취객들이 난동을 부리는 현장에 출동해서 늘 잦은 부상과 상처에 시달리곤 한다. 대부분의 경찰관은 크고 작은 부상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다. 상처 부위에 연고 살짝 바르고 밴드 하나 붙이면 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보호 장비 하나 없이 패싸움 현장에 출동해 조직폭력배와 맞서 싸우다 식물인간이 된 경찰관이 있는가 하면 한밤에 음주단속 중 도주 차량을 검거하기 위해 수백m 거리를 차에 매달려 끌려가다가 길거리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경찰관도 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위험한 현장에 뛰어든 이유는 오직 경찰관이라는 소명감 때문이다.

경찰관이 건강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담보된다. 경찰이 제대로 일할 수 있으려면 점진적 인력 증원도 필요하지만 직무환경 진단 등을 통해 우선적으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부족한 현장 정원을 보충하고 주'야간의 불규칙한 근무에 따른 과로와 피로 누적을 감경시킬 수 있는 근무 형태 도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와 함께 지난 연말 처리가 무산된 공무원재해보상법을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시켜 공무수행상 입은 재해에 대해서는 현실성 있는 수준으로 보상하는 제도가 빨리 시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전국의 경찰관들이 현재보다 조금 덜 아프기를 바라며 또한 지난해 포항에서 순직한 경관 세 분이 국가유공자로 선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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