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구철의 새論새評] 물벼락 갑질과 노동자의 인권

서울대 법대, 동 대학원(헌법 전공). 전 KBS 국제부장
서울대 법대, 동 대학원(헌법 전공). 전 KBS 국제부장

과거에는 상사 손찌검도 예사

반드시 마음 푸는 자리 마련해

물벼락 갑질 초기에 사과 거부

진정성 담긴 소통이 인간 본질

대한항공 일가가 열흘 사이 세 번째 압수수색을 당했다. 둘째 딸 조현민 씨의 물벼락 갑질이 발단이다. 경찰은 현민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갑질 파문 직후 대한항공은 고위 대책회의를 열어 현민 씨를 퇴진시키고 빨리 대국민사과를 하자고 정리했단다. 그런데 언니 조현아 씨가, '땅콩 회항' 사건 때 사과하고 퇴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법적 대응'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4년 전에도 고위 임원들이 '낮은 자세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사과문까지 작성했다가, 현아 씨가 '진노'해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모든 언론이 '이 정도 사안으로 설마 구속까지?' '설마 실형까지?' 낙관적으로 보도할 때, 필자는 방송을 통해 '여론이 매우 나쁘다'며 '구속' '실형 선고'를 예측했다.

이번에도 필자는 모친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이야기가 언급되기 시작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사태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상습 폭행'특수 폭행에 관세 포탈 혐의, 회사의 공정거래법, 노동법, 항공운영법 위반 혐의 등이 당면 이슈다. 앞으로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등 정부 전 부처가 '공공의 적' 대한항공을 해부할 것이다.

거대한 쓰나미의 발단은 어쩌면 '사소'하다. 50대 이상이라면, 상사의 폭언이나 손찌검 한두 번 안 당해본 사람 별로 없을 게다. 그때마다 그 상사가 계급장 떼고 감옥 갔다면 고위 공직자, 고위 임원 몇이나 살아남을까? 그런데도 왜 그들은 살아남아 장'차관이 되고 CEO가 될 수 있었던가? 과거 용인된 행위가 21세기 경제 민주화, SNS 시대에는 용인되지 않는다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과 공감이다. 폭언과 손찌검 뒤에 마음을 푸는 자리가 꼭 있었다. 술기운을 빌려 상사는 사과하고, 부하도 상사에게 호통치며 화해한다. 만일 땅콩 회항 당시 현아 씨가 서울에 돌아와 바로 사무장과 스튜어디스를 불렀다면? 차 한 잔 마시며 부드러운 말로 사과하고 휴가비 몇백 만원 줘서 내보냈다면?

조현아 씨는 "사과해 봤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에 끌려가며 억지로 꺼낸 말이 사과일까? 허공에 뱉은 말이 사과인가? 진정성이 담긴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 이것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인간성의 본질이다.

이명희 씨가 폭언 음성 파일을 폭로한 운전 기사에게 거액을 주어 매수를 시도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인간으로 대우했다면 녹음하고 녹화할 생각을 했을까? 사고가 터져야 사람으로 보인다면, 누구든 SNS에 띄우려 할 것이다. 음성 파일이 몇천 만원이면 동영상은 억원대인가? 대한항공 일가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녹음되고 녹화된다는 전제에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상습폭행, 관세법 위반, 횡령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타인의 경험에서 배운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기업은 두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검증 안 된 3세에게 조직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되며, 노동자를 대등한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는.(대한항공처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도 배우지 못한 기업도 있지만) 그게 상생의 길이다. 마침 어제가 노동절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콜 총리는 서로를 "나의 친구"로 불렀다. 두 정상 간의 신뢰는 독일 통일을 이루어냈다. 반세기 넘게 역사와 가치를 공유해온 한국과 미국이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역사적인 합의를 이루어 나의 친구, 나의 민족이 한자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래서 한반도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땅, 또다시 하나 되는 공동 번영의 발원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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