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공고 밴드부 학생 서울대 음대 수시 특별전형 합격'. 2009년 매일신문 기사다. 예술고, 인문고가 아닌 전문계고에서, 그것도 호른을 잡은 지 3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라서 당시 입시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대구공고의 전설' 이후 9년, 대구콘서트하우스 이형근 관장이 뜻밖의 소식을 전해 왔다. 그때 그 학생이 올해 대구시향 신입 단원 모집에 응시해 합격했다는 것. 그것도 호른 파트 6명을 리드하는 수석 단원으로 말이다.
더벅머리 고교생에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중책인 호른 수석이 되기까지 김태혁(27) 씨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호른의 '맑은 울림'을 따라 9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호른 밸브 처음 잡고 이건 내 운명="입학 후 어느 날 교정에서 들려오는 관악기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호기심에 밴드부를 기웃거리다 제 음악의 스승 정교령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악보, 음표도 전혀 모르고 리코더 운지만 겨우 뗀 그는 밴드부에 들어가자마자 스펀지처럼 음악을 빨아들였다. 호른을 처음 잡았을 때 차가운 금속 느낌과 은은한 니켈 실버의 울림은 소년을 매료시켰다.
"무언가에 꽂히면 전 하나만 해요. 밴드부가 내 길이라는 감(感)이 오더군요. 그냥 음악이 좋았던 거고 그때 호른이 제게 다가온 것뿐이었습니다. 당시 트럼펫이 제 손에 들렸다면 트럼펫이 제 운명이 되었을 겁니다."
1학년 때부터 음악을 하겠다고 졸랐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완강했다. 당시 밴드부 하면 '딴따라'나 '폐병 환자' 같은 어두운 인식이 남아 있을 때였다. 강경하게 반대하던 부모님은 2학년 때 전국 관악대회 대상 우승컵을 안겨드리자 마침내 음악을 허락하셨다.
전국대회 수상은 바로 개인 수상으로 이어졌다. "대구음협대회에서 2위, 연세대 콩쿠르 2위에 이어 영남대 콩쿠르에서 드디어 1위를 했어요. 하지만 이것으로 서울대 진학 요건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해 마지막 대회였던 한양대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극적으로 서울대 입시 조건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연습 벌레' 별명, 오케스트라에 적응=서울대의 힘든 문턱을 넘고 나니 또 다른 장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생경했던 관현악단 생리였다. 밴드부 출신인 그에게 오케스트라는 낯선 영역이었다. 튜닝할 때 기준음도 달랐고 주법(奏法)도 차이가 났다. 예고 아이들에겐 일상이었던 일이 그에겐 모든 게 생소한 일이었다. 특히 조(調) 옮김이라는 전조(轉調)이론에서 헤맸다. 난생처음 접하는 이론, 유일한 방법은 통째로 외우는 일이었다.
3학년 때까지 그의 별명은 '연습만 하는 친구'였다. 오전 6시 기상, 오후 10시 취침 패턴을 한 번도 깬 적이 없다. 학교에서 수업시간 외 그는 호른 밸브만 잡았다.
다행히 연습과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3학년 말부터 서울, 경기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요청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기필하모닉에 서고, 부천필하모닉에서는 수석 보조 역할도 맡았다. 소문이 나면서 마침내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최고봉이라는 서울시향(지휘 정명훈)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급히 투입된 자리라 당연히 연주회 한 번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짐을 꾸리고 있는데 서울시향 호른 수석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음색 좋은데요. 다음 주 또 봅시다." 이렇게 정명훈과 1년을 함께했다.
◆치열한 경쟁 뚫고 대구시향 합격=최고 학부에 입학하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꽃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12년 입대를 앞둔 무렵 음악을 계속할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설상가상 그때 그의 입맛을 유혹한 커피는 그를 바리스타의 길로 이끌기도 했다.
잠깐 '외도'를 끝내고 다시 악기를 잡았다. "어느 순간 무대의 에너지가 그리워졌어요. 잠시 호른을 놓았지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음색에는 자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고비를 넘기고 음악과 다시 만났다. 작년에 졸업을 하고 유학을 가려고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차에 고향 대구에서 오디션 공고가 났다. 서울대 선배부터 유학파까지 대거 몰렸고 응시자들의 '위용'은 그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다행히 평소보다 더 나은 실력 발휘를 해서 1차 통과는 예상했다. 2차 관문에서 경합을 할 때쯤 좋은 기운이 감지됐다. 예감대로 최종 발표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나중에 들은 얘기로 1차에서부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합격자로 꼽아 두고 있었단다)
합격자 발표 때 가장 먼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넨 사람이 있다. 바로 고3 때 레슨을 자청했던 박동욱 씨였다. 김 수석의 '제2 스승'인 그는 이미 대구시향에서 호른 단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를 둔 덕에 27세 제자를 상사(수석)로 모시게 되었지만 음악인으로서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느냐며 기뻐했다.
까까머리 소년은 이제 대구시향의 정식 단원이 되어 매일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다. 금관이 배치되는 무대 맨 뒤 왼쪽 줄 가운데가 그의 자리다.
9년 전 공고생 서울대 입학 기적의 주인공, 우선은 멋진 연주로 대구시민들과 만날 것을 약속했다. 조만간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이나 하이든 '호른 협주곡' 같은 레퍼토리를 통해 그의 멋진 호른 연주를 감상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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