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의 빛과 그늘

여가와 일자리 늘어나는 효과 VS 생산성 저하와 급여 감소 부작용

이달 시행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5일째에 접어들면서 업종별, 근로자별 명암이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들은 달라진 근무시간에 발맞춰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정시 퇴근을 유도하는 등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근로자들은 한결 여유로워진 출퇴근시간을 반기고 있다.  

에에 반해 일부 중소·중견 기업들과 근로자들은 현실화한 주 52시간 후폭풍에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제조업, 건설업을 중심으로 생산성 저하와 인건비 부담, 급여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늘어난 여가와 일자리

4일 오후 5시 30분쯤 대구혁신도시 내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사무실 컴퓨터마다 알림창이 떴다.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산단공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이번 달부터 매주 수요일을 '가정과 문화의 날'로 정했다. 연장근로를 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해 가족과 함께 여가를 보내라는 취지다. 이전에는 한 달에 한 번 가정과 문화의 날을 확대한 것이다.

전체 임직원이 520여 명인 산단공은 2014년부터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근무시간을 줄여왔다. 특히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출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시차출퇴근형' 근무가 활성화돼 있다. 참여인원이 2016년 63명에서 지난해 111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1분기까지 67명이 시차출퇴근형 근무를 하고 있다. 산단공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맞춰 탄력근무제와 정시퇴근 등 기존 제도를 확대`정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자리 창출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52시간 근로에 맞춰 교대인원을 충원할 계획이다. 전국 4천600㎞의 가스망과 150개 공급관리소, 5개 생산기지 등 설비운영관리를 위해 24시간 연중무휴로 근무해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근무시간이 줄면서 추가 고용 수요가 생긴 것이다.

업체들은 주 52산 근무제를 업무 효율성을 높이를 계기로 삼고 있다. 퇴근 이후 컴퓨터를 자동으로 멈추는 '셧 다운제'를 도입하거나, 불필요한 회의 횟수와 시간을 줄이는 등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는 분위기이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달성군 A사는 지난달부터 사무실에 'PC셧다운제'를 도입해 오후 6시 30분 이후에는 컴퓨터가 강제로 종료되도록 전산화했다. 회의시간을 최소화해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한편 연장근로를 원하면 사전에 신청하도록 했다. 아울러 시차출퇴근제를 부분적으로 적용했다. 시차가 있는 해외바이어와 연락해야 하는 해외영업직은 오후 2시에 출근하고 있다.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행업계도 특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평일은 물론 주말 근무도 줄어들면서 여행 수요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서보익 서라벌여행 대표는 "과거 주5일 근무 시행 때처럼 근로시간 단축이 정착되면 여행수요가 늘어나는 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성 유지 부담과 급여 감소 걱정
지역 중소기업과 일부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은 먼 이야기다. 업체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거나 생산량이 줄어드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였고, 대부분 시급 형태로 임금을 지급받는 생산직 근로자들은 수입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지역 제조업체 B사는 최근 생산직 근로자 채용공고를 '상시채용'으로 바꿨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사람을 더 뽑으려 해도 사람이 모이지 않아서다. 인력이 부족해 꼼짝없이 생산량이 줄게 생겼다.

B사 관계자는 "인건비도 부담되지만 인력난으로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생산량이 줄면 납부기한을 맞출 수 없게 되고, 신뢰가 중요한 협력업체와의 관계에 큰 타격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근무가 주를 이루는 지역 건설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공사 기간 증가와 공사비 급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설업 특성상 정해진 공사기간을 꼭 맞춰야 하는데 무작정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인력과 장비를 추가 투입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비용 증가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 건설업체 관계자는 "법대로 주 52시간 근무를 지켰다간 꼼짝없이 손해를 볼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늘어난 여가로 기대감에 부푼 대다수 근로자와 달리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장 근로자 임금은 평균 247.1만원에서 220만원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잔업과 휴일근무가 사라진 영향이다.

달서구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전모(42) 씨는 "시급이 1.5배로 적용되는 오후 6시 이후에 자발적으로 잔업을 해 왔는데 근무방식이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뀌면서 잔업과 휴일근무를 못하게 됐다"며 "230만원 수준이었던 월급이 200만원으로 줄어서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무와 근로환경에 따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의 한 제조업체 부설연구소장은 "연구원들은 프로젝트가 있는 특정 시기에 바짝 일하고 끝나면 쉬는 식으로 일한다"며 "현행 최대 3개월로 된 탄력근무제 기간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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