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19세기 서구 과학의 발달은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발견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라는 믿음을 낳았다. 자연현상의 탐구에는 이런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하나의 결과에는 반드시 하나의 원인이 대응한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비약했다는 점이다. 복잡계 이론이 말해주듯이 자연현상에는 원인이 있지만 하나의 결과는 하나의 원인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원인이 동시적다층적으로 개입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계론적 사고가 사회현상의 탐구로도 확장됐다는 점이다. 사회가 불행한 이유는 사회의 불행으로부터 독점적 이익을 얻는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마르크스주의가 대표적이다. 저개발국가가 '저개발'에 머무는 이유는 저개발국가와 선진국 간의 상품과 서비스의 부등가 교환, 즉 선진국의 착취 때문이라는 종속이론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일 원인론을, 생명은 '동적 평형 상태'의 흐름이라고 규정한 분자생물학자 루돌프 쇤하이머는 '페니-껌(penny-gum)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자동판매기에 페니 동전을 넣으면 껌이 나온다는 사실로부터 '동전이 껌으로 변했다'고 추론하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서는 원인과 결과가 정확히 일치한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100원어치 껌이 나오고 200원을 넣으면 그만큼의 껌이 나온다.

이는 현상(물리적이든 사회적이든)을 단순명쾌하게 보도록 해주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의 폭풍을 부르는 '혼돈'이 세상의 실체다. 그럼에도 정치인은 대부분 페니-껌 법칙을 버리지 못한다. 사회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 아니면 아예 파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파탄을 맞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 증가, 생산 촉진, 기업의 투자 확대라는 선순환을 자동으로 낳을 것이라는 게 소득주도성장론의 믿음이다. 영락없는 페니-껌 법칙이다. 그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론에 빠진 경제 참모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부작용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문재인 대통령 모두 무능하거나 게으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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