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우수리스크의 들꽃, 불꽃

배성훈 디지털국장
배성훈 디지털국장

최근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로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11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으나 고려인의 이주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사를 접하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해주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두 곳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애쓰던 고려인 애국지사들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연해주의 고려인 후손들은 '들꽃'으로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강박한 신념으로 파란만장한 시련의 길을 헤쳐 왔다. 구한말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한 연해주의 '불꽃'들은 광복의 주춧돌이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 방향 112㎞ 거리에 우수리스크가 있다. 우수리스크는 도시 인구의 10%가 고려인으로 '러시아 고려인의 메카'로 불린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최초의 임시정부가 결성된 지역도 바로 우수리스크다. 이곳 연해주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있다. 독립운동사에 '최재형'이란 이름은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그는 없다. 이토 히로부미의 동선 정보를 파악하고, 거사 자금을 건네고, 권총을 구해서 은밀히 안중근 의사의 손에 쥐여 준 최재형. 그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의 적극적인 후원자였음에도 안중근 의사만큼 부각되지 못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 고려인들에게 '페치카'라 불렸다. 페치카는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뜻으로 그는 동포들에게 가장 따듯한 사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에서는 추앙받는 독립운동가지만 우리에게는 잊힌, 아니 기억조차 없는 인물이다. 정부는 1962년 최재형을 안중근 등과 함께 유공자로 서훈했지만 대우는 그에 못 미쳤다. 러시아(구 소련) 국적이었기 때문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묘소 대신 위패를 국립묘지에 모신 것도 2015년이 돼서다.

우수리스크에는 또 다른 항일독립운동을 한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6년 북간도 용정에서 서전서숙을 세워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을 펼쳤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 이위종 선생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파견돼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7년 46세로 생을 마쳤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수이푼강에 뿌렸다. 강변에는 이상설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 이상설 선생의 활동을 접하고 나서 목숨을 내걸고 독립운동을 한 그분들을 그동안 알지 못한 사실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때마침 이달 초 경북도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12명을 초청, 독립운동의 성지인 경북도 방문 행사를 가졌다. 방문단에는 최재형 선생의 6대손 최일리야 양과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한 김경천 선생의 증손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2천215명)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인 경북에서 이런 행사가 열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2019년은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2020년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기가 되는 해이다. 모진 땅에서 피어나는 들꽃처럼 그 강한 생명력으로 조국 독립이라는 아름다운 들꽃을 피우고 막막한 광야에서 삶의 불꽃을 환하게 피워 올린 고려인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본 "너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글귀가 있는 앞산 낙동강승전기념관 의병장 그림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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