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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 속 여성] 사치배척운동

동아일보 1927년 10월 8일 자.
동아일보 1927년 10월 8일 자.

지난해 여름, 독일을 여행했다. 독일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근육질의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일상적인 거리 풍경이다. 화장기 없이 주근깨가 그대로 드러난 그녀들은 매우 당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에 나서는 여성들은 건강하고 활기가 넘쳤다. 어느새 도시를 둘러싼 공기마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쓸 필요 없이 실용적인 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출근길 필요한 준비물은 커다란 가방, 물 한 병이면 충분하다. 화장만 조금 옅어도 "무슨 일이 있냐, 어디 아프냐"고 묻는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그런 맥락에서 탈코르셋 운동은 반갑다. 탈코르셋 운동에서 코르셋이 상징하는 것은 보정용 속옷뿐만이 아니다. '이것을 해야 여성스럽다'고 하는 진한 화장, 하이힐, 긴 생머리 등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꾸밈 노동'에 드는 시간을 줄이자는 운동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졌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90여년 전, 1927년 우리나라에는 '사치배척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아일보 1927년 10월 8일자 신문을 보면 '이화전문학생 사치 배척 단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학생들 스스로가 조직을 만들어 시내 각 상점을 방문해서 조사한 결과 '사치품'이라고 인정한 물품을 구분하고, 이것을 절대로 사용하지 말 것을 결의한 것이다.

당시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던 물건들은 어떤 것들일까? 비단 양말은 무조건 금하고, 비단 색양산이나 종이 양산은 전부 금하였다. '감사', '인조견', '오방주' 등은 절대 금하고, 임시로 허락한 것은 '모시', '메린쓰', '세루' 등이다. 이것도 이미 입던 것만을 허락하고 새로 짓기는 불허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새로 입기로 작정한 것들은 하복으로 모시, 베, 안동포, 춘추복으로는 옥양목, 삼각산과 삼성표에 한정한 옥양목, 송고직, 동복으로는 조선 명주 저고리만 입도록 허락했다.

일제 시대 사치품을 금지하고 국산품을 쓰자고 독려했던 여성들의 자발적인 운동이었던 '사치배척운동'. 당시 전문 교육을 받던 여성들의 이러한 운동은 국산품 장려운동에 가까웠던 것 같다.

지금 여성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동안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들은 '사치배척운동'을 펼쳤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사회적 맥락은 다르지만 여성들이 현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현실을 스스로 바꾸려 노력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요즘 중학생들조차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꾸밈'에 지나치게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과 사치배척운동의 그 어느 접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최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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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정(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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