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3월 서울 중앙청에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 회의를 주재하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메모 한 장이 전달됐다. '김학렬 부총리 별세'라 적혀 있었다. 회의장을 나온 박 대통령은 화장실을 찾아 이런 말을 하며 대성통곡했다. "임자, 미안해! 내가 임자를 죽였어." 혹사라 할 만큼 많은 일을 시켜 49세 나이에 김학렬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자책감에서 쏟은 눈물이었다.
김학렬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 입안과 포항종합제철 설립 등 큰 발자취를 남겼다. 장기영, 남덕우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한국 경제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에 대한 박 대통령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이름 중간 자인 학(鶴) 은 일본말로 '쓰루'였다. 박 대통령은 "우리 쓰루는 내 가정교사야"라며 아꼈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덕분에 박정희 시대 경제부총리들은 소신껏 일했고, 성과를 냈다.
경제부총리 자리는 1963년 처음 등장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경제가 중요하기에 역대 대통령은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부총리 인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경제부총리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저마다 달랐다. 경제 발전 주역이란 칭송을 받는 이들이 있는 반면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난 주범이란 손가락질을 받는 이들도 있다. 경제 부처 간 이견 조정이 쉽지 않고 갈등이 첨예하게 부닥치는 까닭에 경제부총리 자리는 늘 바늘방석일 수밖에 없다.
역임자들의 경제부총리론(論)도 흥미롭다. "경제부총리는 구정물에 발을 담그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의견이 다른 장관들을 설득하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그들의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최소 2주에 한 번 대통령을 뵙고 방침을 받아와서 정책을 수행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공정위원장, 금융감독원장, 이 정도는 대통령이 직접 경제부총리에게 누구를 시키면 좋을지 물어봤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불화설이 또 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속도를 두고 두 사람은 자주 충돌하고 있다. 경제정책은 부총리가 주도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누구 정강이를 걷어찰 수도 없고 김 부총리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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