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프로페셔널

박용욱 신부 종교칼럼 '프로페셔널'

오늘날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별하라면 대부분은 급여와 보수의 차이를 떠올릴 것이다. 풋내 나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페셔널이라면 그 일을 통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던 무렵에는 그 뜻이 전혀 달랐다.

프로페셔널리즘, 곧 전문직업성 또는 전문가윤리의 등장은 중세 대학의 설립과 궤를 같이 한다. 12세기 경, 세계 최초의 서구식 대학교인 볼로냐 대학, 파리 대학 등이 설립되는데, 이들 대학교는 당시 서구 정신문화의 정점이요 강력한 후원자였던 가톨릭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대학이 파리 대학의 중심으로 기능했고, 볼로냐와 파도바, 몽펠리에 같은 남유럽 도시에서는 인간의 신체의 건강을 돌보는 의학대학과 세속 권력을 뒷받침하고 제어하는 법학대학이 명성을 쌓아갔다.

이렇게 대학들을 통해 배출된 성직자와 의사, 법률가들은 당시 사회에서 면허 제도나 허가 제도를 통한 여러 가지 특전을 얻어 각각의 분야를 전문직화하게 된다. 권리가 있으면 자연히 의무도 따르는 법이니, 이들 집단은 자신들의 일을 통해서 사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공익에 봉사하고 직업상 요구되는 특별한 윤리 규정을 지킬 것을 요구받게 되었고, 이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서약(profession)을 통해 표현하게 된 것이 전문직업성 또는 전문직 윤리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과 의학과 법학, 이 세 분야에 요구된 특별한 윤리규정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의료윤리학자 에드문드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최초의 전문가집단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된 특징적인 규범은 비밀 준수의 의무였다. 과연 이들 세 집단은 무엇보다 인간의 비밀을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성직자는 인간의 내적 비밀을 다루는 사람들이라 하겠고, 법률가들은 인간의 외적, 사회적 관계의 비밀을, 의료인은 인간의 내, 외적 비밀 모두를 취급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도 사제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적 비밀을 듣게 되고, 법률가들이 숨겨진 인간관계와 이해관계를 보게 되며, 의료인들이 인간의 내밀한 치부까지 다루게 되는 것을 보면 이들 세 집단에게 전문직윤리를 요구한 중세인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엄중한 윤리규범을 준수하는 전문가 집단을 일컫던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윤리보다는 돈과 더 가까워져 버린 듯하다. 세태를 보건대, 오늘날 전문직과 결부되는 관형어는 '윤리'나 '숙련'이 아니라 '고소득'이 아닐까 싶다.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면서 고용의 안정성을 누리는 고소득 직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뿐, 특별히 엄중한 윤리적 요구나 헌신성과는 연관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전문직으로 대접받기 원하는 많은 직종에서 책임과 노고는 비정규직이나 하급자들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의 직업적 자부심은 오직 급여나 보수에만 달려 있는 것처럼 여기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일반인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높은 진입 장벽과 전문용어의 가림막 뒷켠에서 과연 헌신의 마음과 윤리의식이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헌신하지 않는 프로를 프로라 할 수 있을까.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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