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눈뜬장님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아름답고 풍요로운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났다." 2차 대전 초기 프랑스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 달라디에가 1933년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고 나서 돌아와 이렇게 기록했다. 1933년은 농업집단화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농민을 분쇄하기 위해 스탈린이 자행한 관제기아(官製飢餓)가 한창일 때였다. 달라디에는 이를 전혀 몰랐다. 소련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속임수였다. 달라디에가 본 빵은 회반죽을 색칠해 만든 가짜였다.

뉴욕타임스의 모스크바 특파원 월터 듀런티는 더 질이 나빴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알면서도 "기근이나 아사가 전혀 없으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그는 이런 허위 보도로 193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드물지만 영국 기자인 맬컴 머거리지 같은 의인(義人)도 있었다. 그는 소련의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취재해 맨체스터 가디언에 보냈다. "지금 나는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아사를 말하고 있다…충분히 먹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몇 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영국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베어트리스 웹 부부는 "무분별한 장광설"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눈뜬장님'들은 이 땅에도 있다. 12일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평양 여명 거리와 과학자 거리의 번화를 격찬하며 "북이 핵을 개발하느라 백성을 굶주리게 했다는 보수 진영의 비판은 잘못"이라고 한 민주당 송영길 의원도 그중 하나다. 송 의원은 북한의 다른 지역은 보지도 못했다. 북한의 실상을 알려면 이런 지역을 봐야 한다. 그러나 보자고 해도 북한은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1956년 헝가리를 탈출한 미국 정치학자 폴 홀랜더는 "억압적인 경찰국가의 실상을 보여줄 시각 정보를 입수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회의 가장 나쁜 측면을 보여준다"고 했다. 송 의원이 상식을 갖췄다면 여명 거리와 과학자 거리를 격찬할 게 아니라 자유롭게 북한의 다른 지역을 보지 못해 북한의 실상을 알기 어렵다고 해야 했다. 이런 문제의식의 결여는 송 의원만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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