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명심보감로를 아십니까

곽흥렬 수필가

수필가 곽흥렬
수필가 곽흥렬

어떤 발견이든 발견은 늘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가 보다. 이날도 그랬다. 화원 명곡지구 아파트 단지에 면한 오솔길로 산책을 나선 걸음이었다. 초입에 들어서자 '명심보감로'라 적힌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 산길이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독서였던 '명심보감'과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여간 의아심이 들지 않았다. 안내문에는 여말 충렬왕 때 문신인 추적 선생이 중국 원말 명초 시절 학자인 법립본이 편찬한 원본을 참고해 증보판으로 펴낸 책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 같은 책', 이 훌륭한 수신서를 우리 지방 옛 어른이 지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하며 생각한 만큼 누릴 수 있다 했던가. 지금 산책하려는 이 길이 어찌하여 명심보감로란 이름을 얻게 됐는지 그 까닭을 까마득히 몰랐으니 순전히 내 무지의 소치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친걸음에 보물찾기하는 마음으로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가보면 분명히 의문을 풀 정보를 만날 수 있으리라.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노라니 군데군데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명심보감 구절을 새기고 한글로 뜻풀이까지 곁들여 놓았다. 그중 두 구절만 옮겨본다.
"黃金滿籝(황금만영)이 不如敎子一經(불여교자일경)이요 賜子千金(사자천금)이 不如敎子一藝(불여교자일예)라"-황금이 상자에 가득해도 자식에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기술 한 가지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 "薄施厚望者(박시후망자)는 不報(불보)하고 貴而忘賤者(귀이망천자)는 不久(불구)니라"-조금 베풀고 크게 바라는 사람에게는 보답이 없고, 몸이 귀하게 되어 천했던 때를 잊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하나같이 가슴에 고이 간직해 두고서 새기고 되새길 만한 귀한 글귀들이, 혼자서 나선 산책길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마침내 인흥서원에 이르렀다. 남평 문씨 세거지만 몇 차례 갈 기회가 있었을 뿐, 거기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자리한 인흥서원을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여태껏 명심보감이 무슨 내용을 담아놓은 책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지 언제 누가 지었는지는 까마득히 몰랐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 귀한 책을 지은 사람은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 제학을 지낸 추적이며 그 어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인흥서원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추적 선생은 고려 후기 성리학자인 안향 선생과 함께 이 땅에 유학을 정착시키고 동방예의지국의 기틀을 다진 선비로 추앙받고 있다. 명심보감은 여말 선초 이후 가정과 서당에서 아동교육의 기본 교재로 널리 쓰였으며, 수백 년간 즐겨 읽히면서 우리의 정신적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니 얼마나 값진 책인가. 나는 이 책이 우리 지방 출신의 유학자에 의해 지어졌고 그래서 명심보감과 얽혀 있는 인흥서원과 명심보감로를 세상에 널리 알려 뜻있는 이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느낀다. 여태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닫고 돌아오는 길, 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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