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포 이야기] <26> 70년 전통의 '청송양조장'

농익은 세월이 빚은 구수한 맛 "느리지만 제대로 된 전통 방식 고집"

정우기 청송양조장 대표가 커다란 철제 발효통에서 향을 맡으면서 막걸리가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조관훈 작가 제공
정우기 청송양조장 대표가 커다란 철제 발효통에서 향을 맡으면서 막걸리가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조관훈 작가 제공

투박한 멋과 맛을 지닌 막걸리는 삼국사기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 민족과 궤를 같이한 술이다.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 또는 '맑지 않고 탁하다'고 해서 탁주라고 불리지만, 서민들에게는 풍진 세상의 고단함을 풀어주고 위로해 줬던 벗 같은 술이다. 청송 부남에 가면 70년이 넘은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정우기(65) 청송양조장 2대 대표는 "잠깐 유행처럼 왔다 사라지는 막걸리가 아닌 우리 전통이 깃든 제대로 된 막걸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송양조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쌀로 빚은 주산지와 사과막걸리 주왕, 청송얼음골 동동주.
청송양조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쌀로 빚은 주산지와 사과막걸리 주왕, 청송얼음골 동동주.

◆70여 년 전통의 막걸리 양조장

청송양조장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대표 선친 정무석(2003년 작고)은 청송양조장에서 20여 km 떨어진 이현리에서 지인과 함께 '대전양조장'이란 이름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정 대표는 "청송양조장은 1946년 창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10여 년 전부터 막걸리를 만들어 팔았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정무석은 광복 이후 양조장을 동업자에게 넘겨주고 고향인 부남면 대전리에 양조장을 다시 차렸다. 그 양조장 역시 6·25 때 포격으로 부서지자 임시로 하다 지금의 자리에 다시 건물을 올렸다.

1960년대부터 막걸리 전성시대를 맞이한 청송양조장은 1980년 초까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은 사람들의 입맛과 기호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경제개발로 살림살이가 나아지자 막걸리는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대신 소주와 맥주, 양주를 찾았다.

서울서 사업을 했던 정우기 대표는 1981년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양조장을 이어받았다. 정 대표는 "당시 청송군에는 10여 곳 막걸리양조장이 있었고, 부남면에만 4곳이 있었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양조장은 정 대표가 일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엔 직원이 4명 있었으나 차츰 줄어 아버지와 정 대표 단 둘이 꾸려나갔다. 정무석은 1986년 정 대표에게 사업을 온전히 물려줬다. 정 대표는 "막걸리는 사양사업이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업 계승'이란 말에 할 수 없이 물려받았다"고 했다.

정 대표는 가업이라고 이어받았지만 도무지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1990년 중반에는 막걸리 사업을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막걸리 사업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가스배달을 함께했다. 아내 심영희(62) 씨는 "어렵고 힘들어 몇 번이고 막걸리 사업을 접으려고 했지만 가업이라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막거리 붐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살아있는 효모균이 막걸리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힐링 열풍과 맞물려 막걸리에 대한 사랑이 주당들 사이에서 살아났다. 이러는 사이 대기업에서 막걸리 사업에 손대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에 저가 물량공세로 나섰다.

정 대표는 2011년 상호도 대전양조장에서 청송양조장으로 바꾸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섰다. 맛과 기술을 보완하고 사과막걸리 생산을 위해 대학교에 청송의 특산물인 사과를 이용한 막걸리 용역을 의뢰하는 한편 전문적인 막걸리 제조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00% 순 우리쌀로 만든 '주(酒)산지'와 사과막걸리 '주왕'(酒王)이다.

주산지는 청정지역 청송 쌀과 물로 시골인심을 버무려 빚은 막걸리다. 깊고 은근한 뒷맛이 일품이다. 많이 마셔도 다음 날 머리가 아프지 않다. 주왕(酒王)은 곡류와 과실을 브랜딩한 술로 막걸리에서 발생하는 텁텁한 맛과 냄새를 사과 과즙의 혼합으로 개선했다. 정 대표는 "사과향이 살짝 비출 듯 말 듯하지만 사과 향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엉뚱한 맛으로 변할 수 있어 탁주 본연의 맛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제품 개발 후 정 대표는 청송의 명소 주왕산과 주산지 앞 음식점을 찾아 영업을 하는 한편 관광객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였다. "제가 만든 막걸리를 자신하고 있었기에 한 5년 정도 하니 반응이 오더라고요. 막걸리를 맛 본 관광객이 돌아간 후 택배 주문을 하는 등 이제 전국적인 막걸리가 됐다. 청송사과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물량이 달릴 만큼 인기가 있다"며 활짝 웃었다.

청송양조장은 올 10월에는 '청송얼음골동동주'도 내놨다.

정 대표는 잘 발효되고 숙성된 막걸리를 맛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잘 익은 막걸리는 향긋하고 신선한 향이 난다"고 했다.

대전양조장(옛 청송양조장) 때 막걸리를 담았던 플라스틱 통이 그대로 보관돼 있다.
대전양조장(옛 청송양조장) 때 막걸리를 담았던 플라스틱 통이 그대로 보관돼 있다.

◆전통의 맛 고집

정 대표의 막걸리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막걸리는 집집이 맛이 다르고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집마다 떠돌아다니는 효모가 다르고 그에 따라 생성되는 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전국막걸리품평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소형 양조장을 들러리로 세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대형 업체에서 고두밥을 뻥튀기하듯 해 물을 섞어 만든는 간단한 제조공정의 막걸리와 고두밥을 찌고 누룩를 섞어 효모를 발생하게 한 후 종균을 배합하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효모가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숙성되어 만들어진 막걸리가 함께 비교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정 대표는 정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막걸리 주입과 포장만 시스템에 변화를 주고 제조방식은 그 옛날 아버지가 하던 방식을 그대로 하고 있다.

쌀도 자신이 직접 지은 쌀을 사용한다. 모자라는 쌀은 인근 정미소에서 주왕쌀과 삼자현쌀을 구입해 막걸리를 빚는다. 막걸리를 만들때 반드시 필요한 효모도 한국식품연구원에서 개발한 효모를 사용한다.

정 대표는 막걸리 맛은 쌀과 물, 그리고 누룩의 효모가 결정하지만 결코 만들기가 쉬운 술은 아니라고 했다. "쌀이나 누룩의 상태, 물, 발효 시간, 온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한 사람이 만들어도 일관된 맛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메뉴얼에 따라 만들어도 맛이 달라질 때가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스테인리스 용기에다 산도·당도 측정, 자동온도조절 등 현대식 생산관리가 이뤄지지만 그렇다고 한눈을 팔 수는 없다고 했다. "막걸리는 워낙 변화가 심해 매일 아침 따로 맛을 보고 숙성도를 체크해야만 제대로 된 막걸리가 나온다"고 했다.

◆"아들이 가업 이었으면…"

청송양조장은 현재 정 대표의 둘째 아들 종현(34) 씨가 2년째 막걸리제조 수업 중이다. 종현 씨는 전통을 지키면서 젊은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막걸리학교, 농민사관학교 등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청송양조장 2층에는 대전양조장 때 막걸리을 담았던 플라스틱 통과 항아리, 고두밥 솥이 아직도 보관돼 있다. 정 대표는 "아들이 가업인 막걸리 사업이 전통과 자존심을 지켜가며 2, 3대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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